왜 서울신문은 공정위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기자들 "사주 이익따라 지면 만드나"]
김상열 회장, 3월 공정위 고발당해

상반기 9개 매체 평균 178건 보도
서울신문 279건, 보도량 가장 많아

편집국장 "정부의 과도한 규제장치
되짚어봐야 한다는 게 편집국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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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건 대 279건. 서울신문이 공정거래위원회와 관련해 각각 지난해 하반기와 올 상반기에 쓴 기사 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공정거래위원회’를 검색해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전국 단위 9개 아침 종합일간지의 보도량을 분석한 결과, 서울신문의 보도량 증가가 두드러졌다. 지난 1~6월 9개 신문사의 총보도량은 1603건으로 평균 178건이었는데, 서울신문은 279건으로 가장 많았다.


단순히 보도량만 많은 게 아니다. 지난달 14일과 16일 서울신문은 ‘‘시대착오적’ 기업집단법’, ‘공정위 또 헛발질’이란 면머리 하에 각각 한 면씩 털어 공정위를 정조준했다. 다른 일간지에서 스트레이트성으로 보도했거나 지면에는 싣지 않은 기사가 서울신문에선 공정위의 잘못을 부각하는 제목을 단 채 실렸다.


지난 5월23일 대법원은 대한항공과 계열사가 일감 몰아주기로 2016년 받은 1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날 서울신문 온라인 기사의 제목은 ‘공정위의 대한항공 과징금 처분, 5년여 만에 대법에서 위법 결론’이었고, 다른 언론도 대부분 대법 판결을 요약한 수준의 제목을 달았다. 그런데 다음날 서울신문 18면 머리기사로 올라간 같은 기사의 제목은 ‘공정위 ‘헛발질’… 5년 만에 ‘일감 몰아주기’ 굴레 벗은 대한항공’이었다.


지난달 15일엔 가격 담합을 이유로 각각 수십억대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던 사료업체들이 공정위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역시 상당수의 언론사가 판결 요지를 요약·전달하는 제목의 기사로 보도했다. 이를 지면에 실은 곳은 드물었다. 서울신문은 다음 날 1면에 ‘이번엔 배합사료 헛발질…또 법원서 퇴짜 맞은 공정위’란 기사를 실었다. 이어 6면에서 ‘도마 오른 공정위 무리한 처분’과 ‘공정위 ‘밀어붙이기’식 조사에 기업들 하소연’을 각각 꼭지로 보도했다. 같은 날 ‘담합 과징금 패소 책임, 공정위는 어떻게 질 건가’란 사설에선 “공정위는 기업을 때려잡고 보자고 우격다짐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보다 이틀 전엔 서울대 경쟁법센터가 연 세미나를 토대로 ‘얼굴도 모르는 친척도 총수 책임?…공정위 ‘동일인’ 과잉 규제’란 제목의 기사를 8면 톱으로 보도했다.


공정위를 겨냥한 보도가 연이어 나오자 그 배경을 두고 서울신문 안팎에서 여러 뒷말이 나왔다. 아예 공정위 관련 TF를 만들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황수정 편집국장은 그러나 “(앞서 언급한) 그 기사를 위해 공정위 TF를 구성한 적 없다”고 말했다. 황 국장은 5일 취재를 요청하는 기자의 문자메시지에 답장을 보내 “관련 부서인 경제부와 산업부, 사회부의 출입기자들이 기사를 썼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황 국장은 이어 “새 정부 인수위에서부터 심각하게 지적됐듯, 정부의 과도한 규제 장치는 되짚어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편집국 자체적으로 해당 부서에서 발제된 것을 양감있게 처리했다”면서 “공정위의 순기능이 있는 반면, 현실에 맞지 않는 일방적인 해묵은 관행들은 오래전부터 큰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충분히 기사 가치가 있다고 편집국에서 판단했고, 이번 기획들은 큰 반향도 얻었다”고 말했다.


황 국장의 말대로 공정위의 무리한 조사와 과잉 규제를 비판한 언론 보도는 이전에도 많았다. 최근 1~2년 사이만 해도 ‘공정위의 무리한 조사·고발… 과징금 39% 환불’(조선일보), ‘헛스윙 늘어난 공정위…4년간 조사중 ‘무혐의’ 절반 육박’(동아일보), ‘공정위 ‘헛다리 과징금’ 1조원’(아시아경제) 등의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최근 서울신문의 공정위 관련 보도가 이목을 끄는 배경엔 지난해 10월 서울신문의 대주주가 된 호반건설과 김상열 회장이 있다.


김상열 회장은 사위 등 친족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회사 자료를 고의로 누락한 혐의로 지난 3월 공정위로부터 고발당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지정된 회사와 그 회사를 지배하는 동일인(총수)은 지정자료 제출 의무 등을 지는데, 이 동일인 조항은 지난달 14일자 서울신문 기사에서 “기업의 발목을 잡는 시대착오적인 규제”로 지적된 것이기도 하다.


서울신문이 최근 공정위의 ‘헛발질’ 사례로 비중 있게 보도한 사료업체 건의 주인공이 하림그룹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김홍국 하림 회장과 김상열 호반 회장의 친분은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두 사람은 2019~2020년 기업 임직원들이 릴레이로 진행한 각종 캠페인에서도 서로를 지목했다. 지난 설엔 서울신문 직원들에게 하림 계열사 제품인 라면 세트와 홈쇼핑 상품권이 선물로 지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곽태헌 사장은 회장들 사이의 친분과 기사를 “그렇게 연결시키지 말라”고 했다. 공정위 관련 기사 지시에 관여했냐는 질문에는 “제가 주재하는 회의도 없고 어떤 걸 쓴다고, 어떤 기사가 1면에 들어간다고 보고받은 적도 없다”며 “편집국에서 알아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황수정 국장은 “앞으로도 우리는 관행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불합리한 정부기관의 규제를 신랄하게 진단할 것”이라며 “공정위만 그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자들은 여전히 미심쩍어하고 있다.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 56명은 지난달 연명 성명에서 “뉴스 가치와 무관한 사주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취재·보도 여부와 지면 구성이 결정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 신임 4차장검사의 비위 전력을 단독 보도하고도 다음 날 지면에선 기사가 빠진 사례 등을 지적한 것이다. 중앙지검 4차장 산하엔 공정거래조사부가 있는데, 호반 수사 가능성 등을 고려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바 있다. 지난달 28일엔 검찰이 장기간 닭고기 가격 담합 행위를 해온 하림·올품 등 6개 업체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불구속기소해 주요 언론이 보도했으나, 서울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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