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에 '용어 감수성' 필요한 시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퀴즈 하나. 다음 중 ‘로 vs 웨이드’의 ‘로’가 가리키는 것은? ①법이라는 뜻의 ‘로(law)’ ②날 것 그대로라는 의미의 ‘로(raw)’ ③해당 소송의 변호사 성(姓) ④해당 소송의 원고 성(姓) ⑤모르겠다.


답은 ④번이다. ‘로 vs 웨이드’ 판례는 1973년 제기된 소송에서 유래한다. 당시 낙태 또는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위해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쓴 이름이 제인 로(Jane Roe)라는 가명이었다. 신분 노출을 꺼려 가명을 쓴 이 여성의 본명은 노마 맥코비였다. ‘웨이드’는 담당 검사, 헨리 웨이드에서 유래했다. 연방대법원이 제인 로의 손을 들어주면서 ‘로 vs 웨이드’는 미국에서 상징적 판례가 됐다. 연방대법원이 지난달 이 판례를 뒤집으면서 미국 사회는 찬반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관련 법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터라, 국내 언론에서도 주목했다.


문제는 이 이슈의 복잡성과, 저널리즘의 생명인 신속성과 정확도가 물과 기름 같다는 점이다. 사실 국내 거의 모든 매체들이 무심코 ‘낙태’라는 표현만을 썼다. 그러나 이 용어를 뜯어보면 다분히 정치적 또는 종교적 성향이 녹아있다. 이때문에 미국 유수의 매체들은 ‘낙태’와 ‘임신 중단’ 등의 용어를 섞어서 쓰고 있다. 자궁에 착상한 태아를 고의로 떼어낸다는 의미의 낙태라는 용어는 태아의 생명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임신을 한 여성이 자신의 신체 결정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측면에선 ‘임신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주 썼던 용어인 ‘프로 초이스(pro choice)’는 여성의 선택권에, 공화당 측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인 ‘프로 라이프(pro life)’가 태아의 생명권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우리에게 통상 더 귀에 익은 용어는 ‘낙태’다. 그 용어가 더 먼저 사용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가 변했고 세계도 변했고, 이 이슈에 대한 시각도 다양화했다. 그렇다면 그 용어도 진화하는 게 순리다.


용어를 바르게 이해하고 기사에 쓰는 것은 이런 논쟁적 이슈에선 더욱 어렵다. 어떤 용어를 선택하는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 용어 자체가 정치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만약 임신을 중단할 권리를 요구하는 이들을 두고 ‘낙태 찬성론자’라고 쓴다고 해보자. 이는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예 성립하지 않는 단어인 셈이다. 젠더 또는 성(性)인지 감수성 역시 처음엔 반발을 불렀다. 지금이야 ‘LGBTQ’라는 성소수자 관련 용어가 비교적 견고히 뿌리내리고 있으나, ‘호모’라는 비하의 뜻을 섞은 용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던 때가 근과거다. 혼혈을 가리키는 ‘튀기’라는 말은 또 어떤가. 우리가 쓰는 말은 힘이 세다. 언어는 그 언어를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이들의 의식 역시 지배하기 때문이다.
‘로 vs 웨이드’를 모른다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님을 노파심에 밝혀둔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공부해야 할 용어는 차고 넘친다. 이를 모르는 것이 무조건 잘못이 아니라, 알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라는 이야기를 해두고 싶은 것이다. 저널리즘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용하는 표준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책임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용어에도 감수성이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악의 없이 무심코 쓴 단어가 기사를 읽는 독자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기사를 쓸 때도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낙태 또는 임신 중단이라는 이슈는 뜨거운 감자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기에 더욱 언론인으로서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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