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들어간 아쉬움 있지만… 키이우 참상 전하려 고군분투

[국내 취재진, 키이우 현지 취재]
지상파·YTN·동아·연합·한겨레 등
기자들 현지 가있거나 취재후 복귀

  • 페이스북
  • 트위치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지난 9일부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들어가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생한지 100여일이 지나서야 외교부가 취재진의 진입을 허용하면서 처음으로 수도에 들어간 것이다. 지금까지 동아일보, 연합뉴스, 한겨레, KBS, MBC, SBS, YTN 등의 기자들이 현지에 가 있거나,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다.


전쟁은 장기전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 이번 키이우 취재까지 세 번 이상 우크라이나 현지에 취재진을 특파한 언론사도 있다. 기자들은 러시아군의 최우선 표적지였던 키이우와 민간인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 전면전으로 폐허가 된 이르핀 등 외곽 지역을 찾아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전했다.

지난 9일부터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들어가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자들은 러시아군의 최우선 표적지였던 키이우와 민간인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 전면전으로 폐허가 된 이르핀 등 외곽 지역을 찾아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전했다. 사진은 지난 9일 키이우에 진입하기 전 폴란드 메디카 국경 검문소에서 생중계하고 있는 신준명 YTN 기자.


국내 취재진이 키이우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해 취재진은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야만 현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동안 일부 국내 언론사는 폴란드 프셰미실 등 우크라이나 접경 지대에서 취재를 이어왔다. 지난 3월 외교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난 지 20여일이 지나서야 현지 진입을 허용했지만, 취재 가능 지역은 전쟁이 크게 벌어지고 있는 지역과는 거리가 먼 체르니우치, 르비우 등 일부 서부지역이었다. 방문 기간과 인원도 극도로 제한돼 기자들이 제대로 취재하기 어려웠다.


이번엔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 외교부는 지난 9일 이후 키이우를 포함한 중서부 11개주로 방문 가능 지역을 확대하고, 방문 기간은 2주 이내, 방문 인원도 최대 20명으로 늘렸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수도에 들어간 기자들에겐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 9일부터 일주일간 현지를 취재한 신준명 YTN 기자는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낀 건 너무 늦게 왔다는 아쉬움”이라고 말했다.


신 기자는 “여전히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 키이우는 일상을 회복하는 단계”라며 “취재 3일차에 만난 이탈리아 기자들은 여기 온 지 90일, 100일째라고 했다. 전쟁 시작부터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까지 전부 취재한 그들을 보면서 저희는 뒷북 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를 취재했던 노지원 한겨레 기자는 키이우에 특파돼 두 번째 현지 취재에 나서고 있다. 노 기자는 “난민 취재와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현장 취재는 아주 다르다고 느낀다. 고향에 남아 직접 러시아군의 잔인한 공격을 받은 이들은 죽음 그 자체와 전쟁의 폭력성을 경험했다”며 “허가된 시간은 단 2주로 아주 짧지만 그 기간 동안이라도 최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야만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지난 9일부터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들어가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기자들은 러시아군의 최우선 표적지였던 키이우와 민간인 수백명이 학살된 부차, 전면전으로 폐허가 된 이르핀 등 외곽 지역을 찾아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전했다. 사진은 지난 10일 키이우 인근 소도시 부차에서 보도하고 있는 안상우 SBS 기자.


이번 파견 직전, 러시아군이 쏜 미사일이 키이우와 그 외곽 지역에 떨어지기도 했지만 언론사들은 취재를 놓칠 순 없었다. 조정 SBS 보도국장은 “이라크전을 봐도 수도가 함락되면 전쟁이 끝난다. 러시아의 공격 첫 번째 목표였던 키이우는 그만큼 저항의 상징”이라며 “또 전쟁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곳이다. 키이우 주변 도시에서 여러 가지 전쟁 범죄가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취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호 MBC 뉴스룸국장은 “그동안 취재진이 주로 우크라이나 외부나 국경인 폴란드에 있다 보니 취재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며 “전쟁이 길어지면서 잠시 철수했다가 마침 기회가 열렸고, 자원한 기자도 있어 특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를 여러 번 경험한 국내 언론사들은 전쟁 취재에 나름의 노하우를 쌓아 가고 있다. 특히 언론사마다 취재진 안전 문제에 대비해 여러 장치를 마련했다. 헬멧과 방탄조끼 구비는 당연하고 YTN 등은 국제 표준에 맞춰 프레스 안장을 푸른색으로 준비했다. 연합뉴스는 우크라이나 총사령부에 프레스카드를 신청해 발급받았고 KBS와 MBC, SBS 등은 취재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보험을 강화했다.


강훈상 연합뉴스 국제뉴스부장은 “취재진의 신변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이다. 돌발적인 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군이 발급하는 취재허가증을 확보했다”며 “현지에 들어가기 전 구글 지도로 폭격지점, 무기고 등 지형지물을 면밀히 살펴보고 미리 동선을 짜기도 했다. 위험 확률을 줄일 수 있을 때까지 줄여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내 언론사에선 전쟁 취재 관련 교육과 구체적인 현장 매뉴얼이 없다는 문제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참에 YTN은 자체 매뉴얼과 교육 기회를 마련하기로 했다. 김희준 YTN 국제부장은 “주요 외신들은 취재진을 전쟁터에 파견할 때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를 거친 기자들을 선발한다”며 “일단 YTN만이라도 국제 분쟁 전문 언론인의 강연이나 비슷한 프로그램을 찾아 준비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국내 언론계 전체에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현석 KBS 통합뉴스룸 국장은 “위험 지역을 취재할 때 지켜야 할 안전 수칙과 회사 차원의 보상은 정비했는데 기자 교육, 전쟁 취재 매뉴얼 같은 준비는 부족했다”며 “지금은 lT 망을 통해 휴대전화가 터지는 곳 어디서나 생중계가 가능하다. 앞으로 특히 방송사로서는 전쟁 현장이나 분쟁 지역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교육과 매뉴얼이 더욱 필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박지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