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적 삶 사는 2040 여성들 플랫폼… 같은 고객층 가진 '컬리'와 손 잡았죠"

[기자 그 후] (36)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 겸 마켓컬리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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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 겸 마켓컬리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을 지난 25일 서울 역삼역 인근의 컬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등 20년간 기자생활을 한 그는 헤이조이스 경영과 함께 컬리의 홍보와 대관, 사내 소통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나리 대표 제공

여느 기자들처럼 여러 출입처와 부서를 넘나들었지만, 평소 관심사는 하나였다. IT, 테크 기술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 2009년 미국 스탠포드대학 연수 중에 실리콘밸리에서 모바일 혁명을 목격했다. 엑셀러레이터, 클라우드 컴퓨팅, 공유경제 등 당시 국내에선 생소했던 개념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인터넷 혁명 이후 또 한 번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될 텐데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고, 직접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거라는 소망을 품게 됐다. 20년 간 하던 기자 일을 그만두고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과 창업까지 일궈낸 이나리 헤이조이스 대표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최근 이나리 대표에겐 보라색 명함 하나가 더 추가됐다. 지난 1월 마켓컬리 운영사 컬리가 헤이조이스를 인수한 이후 그는 컬리의 커뮤니케이션 총괄 부사장을 겸하고 있다. 새벽배송의 선구자인 온라인 유통서비스업체 ‘컬리’와 일하는 여성을 위한 커리어 성장 플랫폼 스타트업 ‘헤이조이스’의 만남은 업계 안팎에 큰 화제를 몰기도 했다.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컬리에 합류한 이 대표는 헤이조이스가 있는 강남구 선릉 아지트와 역삼역 인근의 컬리 사무실을 오가며 바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헤이조이스 경영과 함께 컬리의 홍보와 대관, 사내 소통 등의 업무를 맡으며 두 회사 간 협업 서비스를 위한 그림도 그려나가고 있다.


이 대표는 “컬리와 헤이조이스의 페르소나는 굉장히 동일하다. 본인의 일과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고 싶어 하는 2040 여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속 가능한 유통 생태계, 좋은 브랜드가 되려면 그 안에 훌륭한 커뮤니티와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는 컬리의 신념이 확고하다”며 “헤이조이스는 커뮤니티 구축과 타깃 고객층에 대한 이해가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고, 전용 웨비나 개발·운영 기술력까지 갖고 있다. 1000만 고객이 있는 컬리를 통해 헤이조이스도 플랫폼으로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서로 손을 잡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 헤이조이스 선릉 아지트에서는 매주 각종 이벤트와 모임, 워크숍 등이 열렸다. 사진은 여성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을 초대해 진행된 ‘워크 파티’모습. /헤이조이스 제공


2018년 창업한 헤이조이스는 커리어 개발을 하고 싶은 여성을 위한 강연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제공한다. “능력이 있어도 조직 안에서 목소리 내기 두려워하고, 숨어 있는” 여성 전문가를 찾아내는 것도 주요한 일이다. 그렇게 창업 4년 만에 ‘여성 전문가 레퍼런스 그룹’은 1200여명을 돌파했고, 온라인 컨퍼런스인 ‘콘조이스’에는 많게는 2000여명의 회원이 참여하는 등 국내 최대의 워킹우먼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1992년에 기자 생활을 시작한 이 대표는 세계일보, 동아일보 등을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그의 가장 큰 전환점은 2012년 50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은행권청년창업센터재단의 합류 제안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미국 연수 이후 실리콘밸리에서 보고 들은 혁신 사례를 기사로 소개하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기자라는 직업을 그만둬야 하는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변화의 한복판에서 관전자가 아닌 플레이어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었다”는 이 대표의 열망이 이뤄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 때 그는 초대 센터장을 지내며 본격적으로 국내 창업 생태계 근간을 마련하고, ‘코워킹스페이스(공유 업무 공간)’, ‘데모데이(투자설명회)’, ‘엑셀러레이터’ 등의 개념을 들여오기도 했다. 그러다 2015년 제일기획에서 신사업과 투자를 총괄하는 상무로 일하다 헤이조이스 창업에 나선 게 지금까지 그가 일궈온 과정이다.


“내가 한 일을 가지고 제대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완전히 내 책임으로 돌아오는 건데 그게 꼭 즐거운 일만은 아니겠죠. 그래도 나라는 사람이 결국 어떤 일의 주인이 되어서 온전히 평가받는 기회를 인생에서 좀 가져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었어요.”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자존감 강화를 지원한다’는 헤이조이스의 목표는 이 대표의 삶과도 닮아있다. 첫 직장으로 외식업체 TGI프라이데이즈 창업팀에서 일했던 1991년, 대부분 직장에선 여성들만이 유니폼을 입고, 결혼하면 그만두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였다. 그는 평생 일을 할 수 있으려면 기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언론사는 그나마 일반 회사에 비해 여자가 결혼해도 버틸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였다.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라는 위치까지 올라도 여전히 일하는 여성의 롤 모델은 찾기 어려웠다. 이 대표가 “헤이조이스를 통해 여성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일을 했다”고 자부하는 이유다.


그가 “한 분 한 분 모시며” 스카우트해 5명의 구성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창립 4년 만에 30여명이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냥 다 어렵다는 게 창업이지만, 무엇보다 MZ세대가 주요한 조직에서 새롭게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꾸려나가는 건 그에게 큰 도전이기도 하다. “내가 선배라고, 30년차 시니어라는 걸 내세운다고 되는 게 도저히 없는 그런 일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헤이조이스의 비전은 뭐고, 나리님은 어떤 회사를 만들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을 수시로 받아요. 그 모든 질문들에 솔직하면서도 분명하게 답을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런 과정 속에서 제가 이전보다 더 나은, 일하는 사람이 됐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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