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쓰는 디지털 기사의 민낯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그냥 개최국 중국이 메달 모두 가져가라고 하자.” 지난 7일 밤, 베이징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경기가 끝난 직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서울신문 기사다. 기사 본문에 “그냥 개최국 중국이 메달 모두 가져가라고 하자”라는 문장이 10번 반복됐고, 제목 역시 같은 내용이 2번 반복됐다. 기사 본문 곳곳에도 개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문장이 들어 있었다. 서울신문 평화연구소 사무국장(논설위원 겸임)이 쓴 이 기사는 네이버에서 4만여개의 공감 표시를 받았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이 기사를 출고한 지 약 30분 만에 삭제했다. 기자협회보 취재에 따르면 기사 요건을 갖추지 못한 개인 블로그 성격의 글이라는 점 등을 들어 기사 수정을 요구했지만 거부해 삭제했다고 한다.


서울신문이 기사 게재와 삭제 경위를 밝히지 않아 구체적인 내막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서울신문이 다음날 ‘어젯밤 돌발 상황을 계기로 온라인 기사 출고 원칙을 명확히 하겠다’는 데서 보듯 실수는 분명 아닌 듯하다. 누리꾼이 열광했으니 기자 개인의 일탈이나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넘겨야 하는 걸까. 그러기엔 여러 가지 의문이 따라온다.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것은 기사의 기본인데, 왜 이런 식으로 기사를 썼을까. 편집국장을 지낸 기자라도 데스킹을 받아 출고하는 게 원칙인데, 왜 기자 단독으로 내보낸 걸까. 콘텐츠 내용과 배포 등을 책임지는 편집국의 수정 요구를 국장급 기자는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지면 기사였다면 이런 식으로 쓰진 않았을 테고, 설령 썼다고 해도 걸러졌을 것이다. 서울신문 사례를 일반화할 수 없지만 온라인 기사 송고에 허점이 드러나는 배경엔 디지털 환경이 놓여 있다. 디지털 기사가 종일 쏟아지는 환경에서 취재 내용을 일일이 검증할 게이트키핑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다른 언론사보다 더 빨리 내보내야 조회수가 올라가니 먼저 출고하고 나중에 수정하는 일처리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언론사별 차이는 있지만 속보 대응을 명목으로 대부분 기자들에게 온라인 출고권을 부여하고 있다. 물론 소속 부서장의 허가를 얻어 출고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서울신문 사례에서 보듯 대개 무용지물이다. 문제의 기사들을 걸러낼 위치에 있는 국장급 기자가 마음대로 기사를 출고하는 현실 아닌가.


디지털 뉴스 관리가 사후 감시에 머물고 있으니 크고 작은 오보가 잇따라 터져 나온다. 독자에게 고개 숙이고, 그때뿐이다. 그나마 오보 경위를 밝히고 사과하면 다행이지 슬그머니 수정하거나 삭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안타깝게도 기자들이 디지털과 지면을 이중적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지면 기사는 신중히 쓰는데, 디지털 기사는 좀 틀려도 나중에 고치면 된다는 식이다. 뉴스가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이용자들에게 전달되는 시대다. 디지털 기사와 지면 기사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면이든, 디지털이든 저널리즘 가치는 동등하게 지켜져야 한다.

디지털 전환 성패의 핵심은 자체 사이트 활성화와 충성 독자 확보다. CMS를 개편하고, 디지털에 투자하고, 진통을 겪으면서 디지털 뉴스 운영에 최적화한 형태로 조직을 바꾸는 것도 자사 웹사이트로 독자를 유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양적으로 디지털 기사를 늘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디지털 기사의 질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디지털 기사라고 가볍게 쓰고, 품질을 소홀히 하는 사이 독자는 시나브로 떠나간다. 조회수에 취해 싸구려 기사 양산에 몰두한다면 탈포털커녕 디지털 경쟁력도 무너진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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