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매치

[이슈 인사이드 | 법조]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임찬종 SBS 법조팀 기자

‘단두대 매치’라는 표현이 있다. 이기는 쪽은 살아남고, 지는 쪽은 목이 잘리는 경기라는 뜻이다. 보통 스포츠 분야에서 승자가 토너먼트에 진출하고 패자는 탈락하는 상황이라든지, 패할 경우 감독이 경질되고 이길 경우 자리를 보전하는 경기를 묘사할 때 이용된다. “리버풀과의 경기는 연패에 빠져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솔샤르 감독의 단두대 매치가 될 전망이다”라는 식이다.


이번 대선 역시 여야 후보의 단두대 매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 모두가 대선을 앞두고 검찰 또는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대선의 승패가 두 사람에 대한 수사 과정과 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믿고 있다는 뜻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더 이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패하는 쪽은 지금까지 제기된 모든 의혹에 새롭게 제기될 의혹까지 더해서 수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다. 승자는 청와대로, 패자는 감옥으로, 그래서 단두대 매치다.


‘대선의 단두대 매치화’는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선거의 승패가 수사와 재판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치주의는 법 앞의 평등, 대선의 승자든 패자든 관계없이 일관된 기준에 입각해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번 대선이 단두대 매치가 될 것이라는 관측은 ‘대한민국에 법치주의 같이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 있는가?’라는 냉소적 판단에 입각한 것일 수밖에 없다. 형사사법 절차를 담당하는 경찰, 검찰, 공수처, 법원은 ‘대선의 단두대 매치화’를 모욕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단두대 매치가 된 대선은 민주주의와 선거제도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의 중요한 기능은 경쟁하는 정치세력 사이에서 권력이 평화적으로 이양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비교정치학자들은 선거를 통한 평화적 권력 이양을 입헌 민주주의 정착 여부를 가리는 지표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의 승자는 (적어도 집권 기간에는) 형사적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고, 패자는 가혹한 수사를 감당해야 한다면, 이를 평화적 권력 이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거가 단두대 매치가 된다면, 서로 경쟁하는 두 정파는 승리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밖에 없고, 정치는 아군과 적군을 판별하는 과정으로 전락할 것이며, 마침내 갈등은 내전에 준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야 대선 후보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관들이 정치적 공정성을 의심받을 만한 행보를 이어가면서, 이번 대선이 단두대 매치가 될 가능성은 불행히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우리 편은 청와대에 입성하고, 상대 편은 감옥에 입감되는 것이 특정 정치인을 좋아하는 팬덤에 속한 사람들이 꿈꾸는 선거 결과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의 바람대로 대선 후보들의 미래 거주지가 청와대 또는 감옥 중 한 곳으로 정해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는 적폐청산 또는 정치적 보복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전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형사사법 절차의 최소한의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다. 억울하면 권력을 잡아야 하며, 다수를 차지한 쪽이 곧 정의라는 약육강식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 나서는 후보 중 단두대 매치를 거부할 사람이 있을까? 형사절차를 보복의 수단으로 삼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주는 후보가 나온다면, 나의 한 표는 그 사람에게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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