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은 사주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서울신문이 지난달 27일 주최한 ‘2021 서울미래컨퍼런스’는 서울신문 대주주가 누구로 바뀌었는지 보여줬다.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은 이날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 직함으로 김부겸 국무총리 등 내외빈이 참석한 컨퍼런스 개막식 단상 한가운데 섰다. 김 회장이 김 총리와 대화하는 모습은 서울신문에도 실렸다. 데뷔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김 회장은 고무됐던지 이날 오후 서울신문 편집국을 찾았다. 지난 1일엔 편집국 국·부장단을 서울 양재동 호반건설 본사로 불러들였다. 김 회장은 면담에서 호반그룹 경영은 자식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미디어사업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호반건설은 2019년 6월 말, 포스코 보유 지분 19.4%를 사들이며 서울신문을 뒤흔들었다. 그 후 2년간 서울신문 내부는 지배구조를 놓고 분열과 갈등이 반복됐다. M&A의 귀재라고 알려진 호반이 그 약점을 파고들었다. 지난 7월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보유한 주식 매입을 위해 특별위로금(1인당 평균 7500만원) 등 600억원을 내밀었고, 서울신문 구성원 56%가 동의했다. 지난달 12일 호반건설 자회사인 서울미디어홀딩스는 서울신문 주식 28.18% 취득 결정을 공시했다. 이로써 호반은 서울신문의 지분 47.58%를 확보해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자산규모 10조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에 지정된 호반이 연 매출 770~780억원에 불과한 서울신문을 인수한 이유는 무엇일까. 미디어 영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종이신문 매출은 정체를 보이는 현 상황에서 언론사업을 통해 돈 벌기 힘든 데도 말이다. 그래서 언론사주의 특별한 지위, 그에 따른 유무형의 이득을 취하고 사업 확장의 방패막이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서울신문을 인수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우려는 호반이 kbc광주방송 대주주로 있으면서 광주방송을 악용했던 여러 사례가 증명한다. 서울신문 최대주주로 등극한 호반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큰 이유다.


그동안 김 회장이 보여준 건 즉흥적인 말 몇 마디가 전부였다. 서울신문을 4대 일간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비전이나 투자 계획은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발맞춰 유력 언론들은 디지털 구독자 확대 등 콘텐츠 유료화 모색에 분주하다. 몇몇 신문사만 보더라도 로그인 회원 가입 등 사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용자 경험에 특화한 형태의 웹과 앱 개편, 그에 따른 새로운 콘텐츠 전략도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서울신문에선 이런 움직임이 별반 보이지 않는다. 김 회장은 고교 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서울신문을 배달했다는 일화를 종종 언급하곤 했다. 서울신문과의 인연만 강조해선 곤란하다. 서울신문은 수용자 대상 신뢰도·영향력 조사에서 순위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구성원과 머리를 맞대고 저널리즘 품질 제고를 위한 혁신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대대적인 취재 인력 확충은 말할 것도 없고 디지털 인프라 개선, 디지털 기술 인재 영입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호반을 대주주로 받아들인 서울신문 구성원들도 책임이 따른다. 언론계 안팎에선 117년 역사의 서울신문을 호반에 팔아넘겼다고 인식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잇따라 나오는 호반과 서울신문 관련해 조롱 섞인 지라시들은 이런 상황이 투영됐다. 호반과 인수 협상을 진행한 사주조합장은 상무로 직행하고, 호반 쪽과 친밀한 인사가 편집국 상왕 노릇을 한다는 소식은 씁쓸하다. 서울신문 구성원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사주조합은 고용노동부에 조합 해산 여부 유권해석을 의뢰할 정도로 존폐기로에 섰다. 이러려고 2년 가까이 독립언론을 지키려 싸웠냐고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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