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방식으로 질병 경험 풀어낸 기자들

기자 개인들, 유방암·혈액암 등
치료 경험 엮어 기사·책 연재
"환우들에게 실질적 도움 주고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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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들의 책임이 낫는 일이 아니라면 그들의 진정한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고통을 목격하고 경험을 표현하는 것,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중략) 아픈 사람들은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 이는 사회 안에서 양측 모두의 책임이다.’


사회학 교수 아서 프랭크의 에세이 ‘아픈 몸을 살다’의 한 구절이다. 39세에 심장마비를 겪고 그 다음해 고환암 진단을 받았던 그는 아픈 사람들이야말로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목격자라고 말한다. 질병이 그들을 삶의 경계로 데려가면서, 아픈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삶을 어느 때보다 투명하게 마주보고 그 안에서 경이를 발견하고 배워서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질병을 경험하거나 만성질환을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8년 ‘국가암등록통계’에선 암 유병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아직도 질병에 관한 이야기는 부족하기만 하다. 다행히 최근 몇몇 기자들은 자신의 질병 경험을 다양한 층위에서 풀어내며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들은 흔한 질병 서사의 영웅 이야기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고통과 죽음을 바라보며, 한편으로 삶의 소중함과 깊이를 얘기하고 있다.


2019년 말 유방암 판정을 받은 후, 지난해 12월부터 한겨레신문에 ‘양선아의 암&앎’을 연재하고 있는 양선아 한겨레 기자는 그 대표적 사례다. 양 기자는 “암에 걸리고 나서야 내 주변에 암 환자들과 암 경험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마침 후배가 선물해준 아서 프랭크의 책을 읽고 질병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나에게도, 다른 유방암 환자들에게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 항암을 했을 땐 너무 힘들어서 연재 제안을 거절했는데, 방사선 치료까지 끝나고 몸이 회복되고 나서부턴 1년 전을 회고하며 연재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말까지 약 6개월간 암&앎을 연재했던 양 기자는 복원 수술 일정으로 잠시 휴재 후, 지난달 초 시즌 2를 다시 시작했다. 그는 “암 환자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까지 염두에 두면서 연재물을 쓰고 있다”며 “암이라는 게 일종의 위기라면, 우리 인생에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지 않나. 그런 때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이겨내는 것이 좋을지,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인생에 지혜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2018년 혈액암 중 하나인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4기를 진단받아, 총 6차례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은 정영훈 KBS 기자도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최근 연달아 책을 냈다. 지난 6월 ‘살아있다는 달콤한 말’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적 경험을 담은 책을 펴낸 데 이어 지난주엔 의학 정보를 담은 책, ‘암 완치로 여행하는 우리를 위한 안내서’를 출간했다.


정 기자는 “고령화 사회로 암이 일상화되면서 암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언제 어디서나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점, 또 항암을 받으면서도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그게 첫 책 출간의 의미였고, 두 번째 책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암 환자와 보호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감수를 받아 항암치료 부작용을 극복하는 요령 등 암 치료에 필요한 의학적인 정보를 주로 담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겪은 질병의 경험을 확대해 별도의 기획을 한 사례도 눈에 띈다. 지난해 6월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장일호 시사인 기자는 그 해 말, 죽음에 관한 기획기사를 쓰며 일종의 ‘숨어 있는 투병기’를 썼다. 선후관계를 따지면 기획 준비가 먼저였지만, 장 기자는 자신에게 절박한 기획이라고 생각해 병가 상태에서도 자원해 기사를 썼다. 장 기자는 “연재 마지막 즈음엔 항암이 누적돼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였음에도 직접 데스킹을 봤다”며 “그만큼 기획에서 나온 이야기가 제 질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질병과 돌봄, 죽음 같은 큰 주제들의 맥락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독자들에게만 읽히는 게 아까워 그는 최근 이 기획을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란 책으로 엮어 냈다. 장 기자는 “아픈 사람이 그렇게 많고 매일같이 많은 사람이 죽는데도, 큰 병을 진단받고 나면 암담하다. 질병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아프면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정보가 하나도 없어서”라며 “앞으로도 이 주제를 계속 얘기해보고 싶다. 특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호스피스 제도의 확대라고 생각하는데, 편집국에 돌아간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기획해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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