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다시보기] 한국언론, 과연 無所不爲인가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국장





우리 사회엔 일종의 ‘언론무한책임론’이 존재한다. 정치개혁이 안 되는 것도, 남북관계가 잘 안 풀리는 것도 모두 ‘전적으로’ 언론 책임이라는 것이다.

정치개혁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서는 배신과 식언을 밥 먹듯 하는 정치인보다는 그런 저질 정치판을 그저 중계보도나 하며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언론 때문이라고 탓한다. 또 남북관계의 부침에 대해서도 북한의 변덕스런 행동이나 미 부시행정부의 고압적 대북강경책을 탓하기보다는 대북 퍼주기에 골몰해온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이 잘못됐다고 집요하게 공격하는 조중동 등 거대신문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사실 이같은 ‘언론무한책임론’의 배후에는 ‘한국언론은 못하는 게 없다’는 일종의 ‘언론만능론’이 자리잡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한국의 언론인들은 ‘언론무한책임론’이 의미하는 무거운 책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언론만능론’이 뜻하는 한국언론의 막강함을 은근히 즐기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한국언론은 못하는 게 없을 만큼 막강한 존재일까. 최근 이러한 통념에 도전하는 참신한 문제제기에 접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난 6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박선원 교수(연세대 통일연구원)는 ‘조중동은 물론 한국언론의 보도 논조가 햇볕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에 거의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는 요지의 도발적 문제제기를 했다.

지난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약 4년반 동안의 각종 여론조사를 분석해 본 결과 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평균 지지율은 65∼79%로 정책 일반에 대한 지지율 47∼48% 보다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특히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북한의 협력과 기만에 따라 크게 동요하는 양상을 보였다면서 “햇볕정책 지지율에 관한한 국내 언론의 역할은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박 교수의 이같은 주장에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거대보수신문의 논조가 햇볕정책에 대한 일반국민들의 지지율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특정 시점, 특정 상황의 정책수행에는 상당한 영향을 미쳐 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2001년 광복절 평양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측 민간대표단의 행동에 엄청난 문제가 있었던 것처럼 대서특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당시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해임과 민주당·자민련의 정책공조를 파기시킨 것은햇볕정책에 대한 한국언론의 ‘영향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시간대를 길게 잡고 살펴보면 박 교수의 관찰에는 분명 역사적 진실이 담겨 있다. 일례로 지난 6월말 서해교전 사태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지난 93년 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 때 드러난 사재기 열풍같은 혼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0월 ‘북한 핵개발 재개 시인’이 미국측에 의해 발표됐을 때도 주가는 오히려 상승했다. 조중동 등 일부 언론들은 금세라도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어도 오히려 국민들은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

하긴 지난 봄 민주당 경선때는 조중동의 집요한 부정적 보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노풍’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폭풍을 일으킨 바 있다. 거대언론의 위력으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나간 것이다. 한국언론은 더 이상 무소불위의 막강한 존재가 아니다. 언론다시보기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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