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의 불씨 남긴 '미디어 바우처 법안'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디지털 플랫폼이 등장한 이후 안정적 수익구조를 찾지 못하는 언론사들의 고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디지털 플랫폼의 광고 독점과 언론의 종속화 현상은 언론사 존폐를 넘어 저널리즘의 추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실제로 언론사들이 공익적 효과는 크지만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여야 하는 심층기획, 탐사보도 같은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외면하거나 소홀히 다루고 있는 현상은 두드러진다. 이른바 가성비가 떨어지는 콘텐츠를 포기한 언론사들이 집착하는 건 단기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연성뉴스, 선정적 기사, 복제 기사들이다. 이런 언론을 바꿔야 하느냐, 구조적 환경을 바꿔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분명한 건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이 존립을 위협할 지경이라는 점이다.


기존 언론사들은 디지털 플랫폼들과 경쟁해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드는 방안을 10년 가까이 고민해왔지만 뾰족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기존 언론과 디지털 플랫폼과의 시장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저널리즘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은 필수적이다. 세계 각국에서 신문사에 대한 부가가치세 감면이나 공영방송의 수신료 징수 등과 같은 언론 지원정책을 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가 시민들에게 일정 액수의 바우처를 제공하고 시민들은 자신이 원하는 언론사에 이를 할당하는 ‘미디어 바우처’ 제도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민들이 지원 언론사와 액수를 정한다는 점에서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독립성도 담보할 수 있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미디어 바우처 도입을 위한 관련 법안을 지난달 28일 내놨다. 김승원 의원을 대표 발의자로 송영길, 김의겸 의원 등 여당 및 친여 의원 22명이 발의한 ‘국민참여를 통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다. 저널리즘 강화를 위한 미디어 바우처의 도입은 세계적으로도 유사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빈사 상태인 언론에 재정적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시민들로부터 언론이 제도적으로 견제와 감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법안은 국민에게 일정 금액 담긴 바우처를 줘 언론사를 직접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투표권’을 주는 형식이다. 국민이 언론사와 기사를 평가해 미디어 바우처를 주고 이를 집계해 정부 광고집행 기준으로 삼겠다는 내용이다. 정부광고 집행 기준이었던 ABC협회의 신문부수 조작 사태 때문에 이런 방식을 택했다는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공적 재원을 활용한 저널리즘의 강화라는 미디어 바우처 도입의 근본 취지를 오도할 수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추가 재원 투입에 대한 논의 없이 언론사에 대한 투표권 행사를 ‘바우처’라고 주장하는 건 ‘민주적 결정’을 명분으로 현 정권에 눈엣가시인 기존 언론사의 기득권 약화를 노린 다른 계산은 아닌지 의심도 든다. 김승원 의원은 입법 기자회견에서 “전체 언론의 0.015%에 불과한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연간 2500억원의 정부 인쇄매체 광고비의 10%인 254억원을 받아갔다”고 특정 언론사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려면 ABC협회의 신뢰도를 높이는 작업은 작업대로, 미디어 바우처를 통한 공적 지원은 공적 지원대로 별개로 논의하는 방식이 옳다. 차제에 정부광고와 수신료 등 미디어에 대한 공적 재원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시대변화에 부합하는지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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