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고민만 하고 있냐" 방통위에 쏟아진 쓴소리

경기방송 폐업 1년2개월만에 후속 사업자 선정 논의 시작…공모 일정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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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보다 공모를 먼저 하셔야죠.” “방통위 고민만 1년째인가요?”

방송통신위원회가 경기지역 신규 라디오방송 사업자 선정을 위해 개최한 토론회가 유튜브로 생중계되는 사이, 댓글 창에선 방통위를 향한 쓴소리가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토론회는 경기방송이 폐업한 지 ‘무려’ 1년 2개월 만에 마련된 자리였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지난해 3월 경기방송 폐업 당시 “경기지역 주민의 청취권 보호를 위해 신규 방송사업자 선정 등을 신속히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사업자 공모는 아직 시작도 안 됐고, 관련 안건이 방통위 전체회의에서 정식으로 논의된 적도 없다. 경기방송 옛 주파수 99.9㎒가 공백 상태로 방치된 지 1년이 훌쩍 지나서야 ‘신규 사업자 선정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으니 탄식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지난해 3월 폐업한 경기방송 후속 사업자 선정에 관한 의견 수렴을 위해 '경기지역 신규 라디오사업자 선정,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방통위에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기방송 후속 사업자 선정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문제로 얽혀 있다. 일단 ‘올드미디어’인 라디오 사업 자체의 경쟁력이 낮은 데다가, 경기도는 서울과 인접한 수도권이라 “지역방송의 역할이 가장 미약한 지역”(변상규 교수)이다. 게다가 방송광고판매대행법에 따르면 신규 사업자는 중앙 지상파방송과 광고 결합판매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자체 광고판매를 해야 한다. 2019년도 경기방송 광고 매출에서 결합판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89%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신규 사업자는 시작부터 악조건 속에 놓이는 셈이다.

그래서 ‘어떤’ 사업자를 선정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은 몇 갈래로 나뉜다. 소유 형태로는 공영으로 할 것이냐 민영으로 할 것이냐, 기존 사업자에게 주파수를 줄 것이냐 새 사업자를 선정할 것이냐, 옛 경기방송처럼 종합편성채널로 할 것이냐 TBS와 같이 교통정보 등을 제공하는 전문편성 사업자로 할 것이냐. 어느 한쪽으로 쉽게 결론지을 수 없는 이유는 방송의 공공성, 특히 지상파 지역방송에 강하게 요구되는 공적 역할과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영능력 등 고려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도영이냐 민영이냐, 기존 사업자냐 신규 사업자냐

현재 경기방송 사업 승계에 관심이 있는 곳은 경기도와 OBS 등이다. 경기도의회는 지난달 29일 임시회의를 열어 ‘경기도 공영방송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을 의결했다. 경기방송을 TBS와 같은 경기도형 공영방송으로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법적 토대는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현행 조례에 따르면 ‘경기도 공영방송’은 TBS의 재단 법인 전환 이전 모델로 경기도 내 한 부서(과)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고, 도지사가 제작·편성과 인사권까지 포괄하는 권한을 갖게 된다. 지배구조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도영 형태면 TBS와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상업광고가 허락되지 않아 도에 대한 재원 의존도가 높아질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엔 경인 지역 지상파 방송사인 OBS 관계자가 참석해 경기지역 라디오 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는데, OBS가 사업을 따낸다고 해도 장단점은 있다. OBS는 라디오가 없는 유일한 지역방송으로 어느 정도 명분도 있고, 기존 사업자이기 때문에 라디오방송을 하게 되면 결합판매도 가능하다. 그러나 OBS 역시 옛 경기방송처럼 ‘오너 리스크’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회사다. 더욱이 결합판매제도는 현재 위헌심판 중으로, 방통위는 위헌 여부에 관한 판단과 관계없이 결합판매제도를 전면 재검토할 계획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변상규 호서대 문화영상학부 교수는 “기존 사업자가 들어오면 현 상태를 유지만 하지 않을까, 혁신이 가능할까, 신규 사업자가 들어오면 사업을 몰라서 금방 망하지 않을까, 방송 공익성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를 가질 수 있을까, 암담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지난해 3월 폐업한 경기방송 후속 사업자 선정에 관한 의견 수렴을 위해 '경기지역 신규 라디오사업자 선정,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따라서 방송사업자 선정은 물론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방통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동원 전국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준비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민영방송 사업자가 들어오든 공공기관이 들어오든 어떤 기관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구체화 시켜서 공모 계획을 공개해야 한다”면서 “공모를 늦추지 말고 이런 토론회를 통해 메시지를 던져서 사업자들이 준비할 기회를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객석에 있던 경기방송 해직 PD도 “완벽하게 준비된 사업자는 없다”면서 “결국 방통위의 관리 감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방송사’를 위해

방송의 공공성·지역성·독립성만큼이나 비전과 역량 있는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많았다. 최세정 고려대 교수는 “지역방송이 지속하기 위해선 광고 재원이 필요하고, 순수하게 지역 주민에게 어필할 광고 상품을 개발해 혁신으로 사업을 이끌 비전과 역량 있는 사업자가 선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광고제도 등 라디오방송 환경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변상규 교수는 “인터넷 라디오와 스마트폰 앱 라디오가 출시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용자가 거의 늘지 않았다. 의지와 재원 부족이 초래한 결과다. 앞으로 자율주행 자동차가 대중화될 경우 운전 중에 라디오를 청취하는 수요는 거의 없어질 것이며 핵심 로열티가 있는 10~20% 사이의 인구만 남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라디오가 TV와 동일한 카테고리에서 규제를 받고 있는데, 대중 영향력이 낮은 사업자의 규제수준은 낮춰줘야 한다”며 “라이브 리드 광고(방송진행자가 방송 중 특정 상품·서비스를 언급하는 광고), 광고판매대행 완화, 방송통신발전기금 분담금 면제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방통위는 이날 토론회를 통해 경기지역 라디오의 필요성이 분명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이날 나온 의견들을 참고해 조속히 정책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공모 일정이나 계획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양한열 방송정책국장은 “다시는 실패하지 않는 방송사, 그리고 경기도민과 시청자 이익을 위해 방송할 수 있는 사업자 선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 생각한다”며 “오늘은 (새 경기방송은) 어떤 방송이어야 하나 자유롭게 의견을 듣는 자리였고, 구체적인 정책방안이 마련되면 토론회든 다른 방식이든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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