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실 깨야 한다"는 주문에... 총리는 이렇게 답했다

정세균 총리, 언론인과의 '목요대화'서
"개방형 브리핑 검토, 정보공개 개선" 등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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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18일 언론인들과 '목요대화'를 가졌다. 국무총리실 제공

“언론의 정부 출입처 취재의 부조리한 관행 혁신이 언론개혁의 시발점이 되길 바랍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18일 언론인들과 ‘목요대화’를 가진 후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김성수 국무총리비서실장도 이날 “출입처 중심의 취재 관행 개선이 언론개혁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 과제 중 하나인 건 분명하다”며 “어쩌면 가장 본질적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부터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모델’이란 취지로 매주 목요일 사회 각계각층을 만나고 있는 정 총리가 언론인과의 목요대화 주제로 출입처 문제를 꺼내든 건 이런 인식에서다. 이날 언론계를 대표해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과 함께 지난해 ‘출입처 제도와 취재 관행’을 주제로 공동 논문을 쓴 박재영 고려대 교수와 안수찬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초대된 것도 같은 이유로 볼 수 있다.

정부도 언론도 ‘기자실 밖’ 시민과 멀어지고 있다

박재영 교수는 이날 ‘정부와 언론소통의 변화방향’을 주제로 발제하며 “기자실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공무원도, 언론도, 기자실에 갇혀 “기자실 밖”에 있는 시민들과 멀어진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수는 “정부뿐 아니라 언론의 존재 이유도 시민이다. 그런데 정작 두 기관이 ‘시민’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다. 정부 정책과 뉴스가 공동으로 퇴화하고 있다”며 “이런 아날로그 세팅에서 홍보하고 취재하는 걸 정면으로 재고해 봐야 할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다만 전제가 있다. “기자가 출입처에 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부가 정보를 투명하고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미국식 개방 브리핑제, 정보공개담당관 지정, 정보공개 패스트 트랙(fast track) 등을 제안했다.

안수찬 교수도 거들었다. 그는 “기자들을 규율하는 차원이 아니라 정부가 정보를 시민에 개방한다는 제1원칙에 따라 시민의 눈높이에서 행정 정보공개를 전개해야 한다”며 “브리핑과 정보공개 등 제도의 시스템화”를 강조했다.

안 교수 역시 미국의 백악관 브리핑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백악관 브리핑은 토일을 제외하고 매일 진행되는데, 백악관 내부가 아닌 행정부의 모든 사안을 묻고 답하며 속기록을 공개하는 게 핵심이다. 안 교수는 “청와대 브리핑제 실시 이후 좋아지긴 했지만 모든 브리핑을 ‘고위관계자’로 인용해야 하고, 일단 매일 브리핑을 하지 않는다. 언론과 공보가 함께 후퇴하는 것”이라며 “총리실 차원에서라도 국방, 외교를 제외하고 1주일에 한 번이라도 속기록을 수반한 브리핑을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투명하고 적극적인 정보공개 전제돼야

코로나19가 앞당긴 비대면 시대, 개방형 브리핑제가 안착하면 기자와 공무원이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취재하고 공보하던 방식은 옛말이 될 거라고도 안 교수는 말했다. “현업에 있을 때 후배 기자나 기자 지망생들에게 했던 얘기다. 공무원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취재원 사귀는 건 취재방법 중 제일 하수라고 했다. 정말 중요한 취재는 사람 만나서 얘기 나눈다고 되지 않는다. 문서를 들여다보고 해야 한다. 정부로서도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일일이 기자실에서 수인사하면서 밥과 차를 나누며 공보 활동하는 건 아날로그 시대 이야기가 될 거다. 기자나 공무원이 내밀한 관계가 되길 원하는 기자가 정말 있을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역할극 같은 것 아닌가. 제대로 된 기자라면 궁금한 것에 대해 대답해 달라고 할 거다.”

김동훈 회장도 “기자실에 대해 개편 논의는 필요하다”는 걸 전제로 “개인적으로는 프레스룸이 아닌 브리핑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소신이 있는데. 브리핑룸으로 전환했을 때 과연 어디까지 개방해야 할 것인가, 합리적 개방 범위를 어떻게 둘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어느 매체가 건강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하지 않고 건강한 뉴스를 생산하는지를 잣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운데)가 18일 언론인과 목요대화를 갖고 출입처와 기자실 문제 등을 논의했다. 국무총리실 제공

박재영 교수와 안수찬 교수는 “정부 기관 취재를 공인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며 영국식 프레스카드 위원회 같은 방식을 제안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영국엔 1992년 프레스카드 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기자협회나 언론노조 같은 언론 직능단체와 언론사가 공동으로 구성한다. 프레스카드를 신청하면 위원회는 이 사람이 ‘진지한’ 기자인지를 소득과 신원조회 등 두 가지 방식으로 검증한다. 프레스카드가 발급되면 모든 행정부처의 브리핑과 보도자료에 대한 접근권이 부여되며, 2년마다 갱신된다. 사전 심사에선 전과가 있거나 보도에 문제가 있는 지 등을 검토하고, 문제가 있을 땐 회수할 수도 있다.

안 교수는 “핵심은 하나의 카드 발급 권한을 기자도 정부도 아니고 중간 어딘가에서 공동으로 한다는 것”이라며 “당장 청와대를 위시한 모든 부처에 일괄 적용할 위원회 제도를 만들긴 쉽지 않겠지만 총리실이 선도 가능한 부처부터 일관된 자격을 부여하는 공정한 심사 조건을 만들고 승인된 기자는 개인이건 언론사 개별 구성원이건 브리핑 접근권을 보장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에 가까운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기자협회장, 정부에 ‘출입기자단 제도 혁신 TF’ 제안

김동훈 회장은 “정부와 기자협회가 출입 기자단 제도 혁신을 위한 TF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 회장은 “기자협회가 민주성과 자율성 가지고 내부의 조직 문화 혁신을 논의한다는 전제 아래 정부와 기협이 적극적 파트너십을 가지고 출입처 문화 개선에 앞장선다면 우리 사회 여론의 다양성, 공공성 등의 가치 보장이 존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나온 의견들에 대해 정부 측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정배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실체적 진실의 접근을 위해 기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행안부, 총리실 등 여러분과 협의해서 투명성을 현실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TF 구성 등을 포함해 계속해서 소통하고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성수 비서실장도 “언론계가 어떻게든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이고, 정부도 언론계가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는데 총리실부터 고민해보고 각계각층과 의견을 나누고 부처들과도 협의해서 작은 변화라도 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오늘 논의를 바탕으로 정부와 언론의 부조리한 관행을 타파하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개선 방안이 마련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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