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너머 죽음을 기록하고 추모하다

[일상이 된 죽음들 조명하는 언론]
서울신문, 주중 발행한 1면 통편집
사망한 야간노동자 부고 기사 게재

오마이뉴스, 101가지 키워드로
'교제살인' 판결문 108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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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많은 죽음이 ‘발생’하고 있다. 일하다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코로나19 때문에 죽고, 연인에게 맞아서 죽는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무의미한 통계 숫자처럼 일상화”(김훈 작가) 되어 버린 그 죽음들을, 언론이 깊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지난해 11월21일. 경향신문은 신문 1면을 사고성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 1200명의 이름으로 채웠다. 그리고 산재 사망 아카이브를 만들어 2년여 동안 숨진 노동자 약 2000명의 부고를 기록했다. 경향은 “노동자들의 죽음이 무의미한 통계 숫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고로 숨진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죽음을 기록했다”면서 “파편화되고 기억되지 못하는 죽음을 한 곳에 모아 사회적으로 추모하기 위한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지난 11월12일자 서울신문 1면<왼쪽>은 올 상반기 사망한 야간노동자 42명의 부고 기사로 채워졌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서울신문은 1면 전체에 검은 띠를 두르고 “통계 숫자에 가려진 그들의 죽음과 고달픈 밤의 여정을 전합니다”라고 적었다. 지면에 담지 못한 산재 사망 야간노동자 148명의 부고 기사와 사망 기록은 디지털 아카이브에 담았다. 안동환 서울신문 탐사기획부장은 기자협회보 취재에 “사망 경위를 담은 몇 줄의 문장이지만, 부고 기사라는 형식이 야간노동자의 죽음을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사회의 큰 울림을 줄 거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2년 전 화력발전소에서 야간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24살 청년 노동자 김용균 씨. 그의 이름이 차별과 위험을 일컫는 보통명사가 된 이후, 수많은 ‘김용균들’의 이야기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노동자의 죽음은 이제 단순한 ‘사고’가 아닌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언론도 더는 단편적인 보도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숫자’로 보도되고 쉽게 잊히던 죽음들을 꾸준히 기록하고 추모하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KBS는 지난 7월부터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일하다 숨진 노동자 현황을 집계해 보도하고 있는데, 이들이 주목한 것 역시 “숫자 너머 사람”이다. 지난 12일 보도에 따르면 4개월 동안 집계한 사망 노동자의 수는 329명. 이 소식을 전한 이소정 앵커는 “같은 기간,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보다 훨씬 많다”며 “한국의 노동자에겐 일터의 사고가 코로나19 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 셈”이라고 했다.


노동자의 죽음만이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가장 친밀했던 남자친구에 의해 죽어간 여성” 108명의 이야기<오른쪽>를 시작했다. 흔히 데이트폭력(살인) 사건으로 불리는,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서로 사귀다가 상대를 죽인 사건”에서 ‘데이트’라는 서정적 단어를 지우고 ‘교제살인’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에서 ‘교제&사망’, ‘연인&살해’ 등 101가지 키워드를 조합해 3년간 교제살인으로 죽임당한 108명 여성의 사건을 찾아냈다. 열흘에 한 명꼴이었다. 오마이뉴스는 판결문 108건(2심 포함 124건)을 분석해 기사로 싣고 전체 판결문도 공개했다. 피해자는 이미 죽고 없어 가해자의 목소리만 가득한 판결문에서 “‘음소거’돼 있는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부탁했다. 기사에 취재원으로 등장하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죽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마이뉴스 기사는 그 여정의 절반을 막 지나고 있다. 지난 6일 연재를 시작한 교제살인 기획은 17일 6회까지 보도됐으며, 13회까지 연재를 마친 뒤에는 책으로도 엮어서 나올 예정이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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