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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피겔사건과 언론의 책임

[글로벌 리포트 | 독일]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언론학 박사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2020.10.14 15:58:59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

1962년 10월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제한적 방어’ 제하의 기사로 서독과 나토의 군사훈련 작전 ‘팔렉스 62’에 관한 분석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는 62년 가을에 진행된 ‘팔렉스 62’ 훈련 결과 연방군은 유럽 내에서 전략적 핵무기가 사용된 전쟁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이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의 군사행동이 발생하면 수백만명의 독일인이 희생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슈피겔 측은 이 기사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해 10월10일에 배포될 예정이던 잡지를 이틀 앞당겨 대중에 공개했다. 독일 언론자유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히는 ‘슈피겔사건’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기사는 정치권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10월26일 연방사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연방형사경찰청과 지방경찰이 함부르크와 본에 있는 슈피겔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관련자들의 체포 사실과 더불어 ‘국민 위기감 조성, 기밀 누설, 뇌물 증여’ 등의 혐의가 알려지자 독일 시민사회와 언론계에선 거센 반발이 일었다. 독일 밖의 정치권과 언론계도 우려를 표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강화되자 사민당의 요청에 따라 연방하원에선 11월7~9일 사흘 동안 청문회가 개최되었다. 그 과정에서 민주헌법의 원칙에 어긋나는 조치들이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연정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그해 12월 내각이 새롭게 구성되는 등 슈피겔사건의 파급력은 실로 엄청났다.


1965년 5월 연방재판소가 증거불충분을 근거로 슈피겔 재판을 기각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으나, 슈피겔은 언론사에 대한 수색 및 압수명령 관련 헌법소원을 제기한다. 그에 따라 1966년 8월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왔다. 판결문에는 ‘당국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언론은 민주주의 국가의 필수요소로써 언론엔 여론이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국민과 정치를 연결하는 통로이자 통제기관’으로서 언론을 정의했다. 또한 ‘언론은 여론독점이 형성됨으로써 발생할 여지가 있는 위협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의 의무를 수행’하는 수준에서 국가의 개입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연방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 파기환송이라는 결정을 내린다. 판결내용이 언론에 대한 조건 없는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은 ‘언론자유는 기본법에 따라 보호되는 다른 가치와 충돌할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언론자유와 동등한 지위를 가진 타인과 대중의 법적 이익을 고려’할 것을 명시하여 기본권을 제한하지 않는 수준에서 언론자유가 허락됨을 확실히 했다. 또한 슈피겔의 보도처럼 군사정보가 포함된 사안의 경우 국가에 발생할 안보위협에 대한 부분을 고려해야 함을 명기하여 국가안보에 앞서 언론자유가 무조건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님을 확인시켰다. 여기에는 ‘언론자유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보장되고, 국가는 언론자유가 필요하기에 상호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요컨대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언론자유를 보장했던 것뿐만 아니라 그의 한계를 정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한계는 독일언론위원회에서 자율규제를 통해 지켜지고 있다.


1972년 독일언론위원회는 언론인의 의무를 담은 윤리기준을 도입하여 보도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해 자율규제에 나서기 시작했다. ‘진실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진실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상정하고 있는 윤리기준은 언론인 활동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격권과 명예를 보호하고, 차별 없는 보도가 자신들의 임무임을 확인한다. 법으로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판결과정에서 언론자유로 인한 권리침해를 보상토록 하는 결정도 왕왕 발견된다. 슈피겔사건에서 확인되었듯이 언론자유가 타인이나 단체의 기본권리 혹은 국가안보를 훼손할 권한을 부여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론자유는 언론이 언론으로서 역할하며 기본법으로 권리를 보호받는 대상들에게 위해를 끼치지 않을 때 보호된다는 것, 이를 명확하게 해석했다는 사실이 슈피겔사건이 독일사회에 남긴 유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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