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한달만에 '폭탄주 대가' 된 딸… DNA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 들었죠"

[대를 잇는 기자들] ②김진영 전 광주일보 사장·김혜원 아시아경제 차장 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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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김혜원 아시아경제 기자는 당연히 자신이 기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편집국이라는 아버지의 작업장, 서재에 쌓인 수많은 취재 노트들은 그에겐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들이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편집국에서 아버지는 얇은 회색 원고지에 펜으로 기사를 쓰고 있었다. 김 기자의 아버지는 광주일보 편집국장, 광주전남기자협회장 등을 지낸 김진영 전 광주일보 사장이다.


김 기자는 “기자 생활이 고되고 힘들었겠지만, 아버지가 뒤늦게 귀가해서도 가족과 함께 하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싶다, 기자가 반드시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당연히 기자를 생각하고 자랄 만큼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며 “아버지의 동료 기자들은 날카롭고 짓궂었지만 늘 가족같이 따뜻했다. 언론사라는 조직 내 특유의 사람 냄새가 저를 운명과 같이 그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도 딸이 기자가 된다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딸에게 분명한 자기 소신을 갖되 명철한 논리와 설득력을 갖추기를, 겸양과 솔선, 희생의 자세를 조언했다. 다만 기자 DNA를 물려받은 딸이 집안 내력인 주력(酒力)까지도 그대로 물려받은 것에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딸이 술을 좀 취급하는 편이다. 술 잘 마신다고 소문이 나면 기자 생활이 피곤해질 건 불문가지”라며 “주량을 물으면 못 마신다고 답하라 했는데 입사 한 달 만에 ‘폭탄주 대가’로 스타탄생 하는 걸 보고 DNA는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버지에 이어 기자가 되면서 30년 전 아버지의 취재원이 자신의 취재원이 되기도 했다. 김 기자는 “국회 출입 기자일 당시 아빠와 절친인 18~20대 국회의원과 국회 앞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사발주를 돌려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영상 통화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딸이 당시 국회를 출입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가 ‘네가 OOO 딸내미라고?’였다더라”며 “정치인 등 나의 교우들은 나를 대하듯 딸내미를 대해 줬다”고 덧붙였다.


김 기자는 그의 아버지를 누구보다 기자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소명의식이 강했던 기자였다고 설명했다. 김 전 사장은 서슬 시퍼렇던 신군부 집권 시절 시국선언 기사 게재를 주장하며 당시 편집국장에게 맞서기도 했고, 기사로 대학생들에게 시위 이슈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당시 안기부에 끌려갔던 일도 있었다.


김 기자는 정직하고 성실한 기자의 길을 걸어온 아버지를 보며 누를 끼쳐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최근 고향 집에서 수십 개의 낡은 스크랩북을 발견했는데 다름 아닌 아빠가 기자 생활 당시 직접 쓴 기사와 칼럼을 모아둔 보물 같은 것이었다”며 “차근차근 읽어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기자로서 동지애인지, 아버지의 청춘이 오롯이 담긴 스크랩북 안의 기사들이 감동을 줘서인지, 언론계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대한 자괴감인지, 정확한 눈물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복합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내심 딸이 전문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기자가 되길 바라며 아버지로서 욕심도 내비쳤다. 김 전 사장은 “내 현역 시절 중 아쉬웠던 점이 자기계발에 좀 더 열정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딸은 기자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한다. 같은 기자라도 전문분야를 하나 꿰찼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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