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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폐 디자인에 갇혀 있는 환경보호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2020.09.09 15:47:11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브라질에서 최근 새로운 지폐가 선보였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9월2일부터 200헤알짜리 고액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우리 돈으로 4만5000원 정도 가치다. 브라질에서 새 지폐가 발행된 것은 2002년 20헤알짜리 이후 18년 만이며, 이로써 지폐는 2헤알, 5헤알, 10헤알, 20헤알, 50헤알, 100헤알, 200헤알 등 7가지로 늘었다. 중앙은행은 올해 안에 200헤알짜리 고액권 4억5000만 장을 찍을 예정이다. 시장에 900억헤알, 우리 돈으로 20조원 가까운 돈이 공급된다는 의미다.


새 지폐 발행은 상당한 화제가 됐다. 지폐에 사용된 디자인부터 물가에 미칠 영향, 부패와 범죄 조장 가능성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중앙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현금 수요 증가를 고액권 발행 이유로 들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비상상황에 대비하려는 개인의 현금 보유가 증가하고 정부의 취약계층 긴급재난지원금 규모가 확대되면서 지폐 소비가 늘고 있다.


고액권 유통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고액권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현금다발의 부피가 줄면서 뇌물을 전달하기가 쉬워진다는 점을 들어 부패가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8월 초에 10개 반부패 단체가 고액권 발행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곧이어 일부 정당이 부패와 탈세, 돈세탁, 재산 은닉, 외화 반출 등 각종 범죄행위를 조장할 것이라며 연방대법원에 고액권 발행 계획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환경 측면에서 고액권 발행을 냉소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 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아마존 열대우림을 비롯한 자연환경이 대규모로 파괴되고 있는 현실에 근거한 비판이다.


브라질에서도 과거에는 지폐에 역사적 인물이 많이 사용됐다. 18세기에 독립운동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후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 치라덴치스, 1822년 9월7일 브라질 독립을 선언한 동 페드루 1세 황제, 브라질의 첫 대통령인 데오도루 다 폰세카, 20세기 초 외교장관을 역임하며 오늘날의 브라질 국경을 확립한 히우 브랑쿠 등이 주인공들이었다.


그러다가 1994년에 헤알을 통화로 채택하면서 지폐의 주인공은 ‘인물’에서 ‘자연’으로 바뀌었다. 취지는 좋았다. 사람 사이에 돌고 도는 돈에 멸종 위기의 동물 이미지를 새겨 넣어 자연자원을 기억하고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후 중앙은행의 설문조사를 통해 2헤알에 바다거북, 5헤알에 왜가리, 10헤알에 금강 앵무, 20헤알에 황금사자 원숭이, 50헤알에 표범, 100헤알에 농어 이미지가 사용됐고 이번에 나온 200헤알 지폐의 주인공으로는 ‘갈기 늑대’가 선정됐다.


공교롭게도 200헤알 지폐가 공개된 날,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화재가 극성을 부린다는 내용이 주요 뉴스가 됐다. 브라질 과학기술혁신부 산하 국립우주연구소(INPE)는 지난 8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화재가 2만9307건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8월을 기준으로 최근 10년 사이에 2019년 8월(3만901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2018년 8월(1만421건)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많다. 이보다 앞서 나온 INPE의 자료에서는 2019년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 면적이 920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축구 경기장 119만5454개에 해당하는 넓이다. 군 병력까지 동원해 아마존 열대우림 환경 보호에 나서고 있는 브라질 정부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참담한 내용이다.


환경 전문가들은 정부의 환경에 대한 인식과 정책 방향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아마존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는 과학적 조사 결과를 ‘거짓말’로 몰아붙이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환경부 장관은 환경보호보다 경제적 개발 이익을 우선하는 행보로 국내외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됐다. 브라질 정부의 환경보호 의지가 지폐 속에만 살아 있다는 조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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