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기사에 '직접 인용'이 너무 많다

[컴퓨터를 켜며] 강아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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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강아영 기자협회보 편집국 기자

지난 주 1면에 <2020 상반기, 언론이 가장 많이 인용한 인물은?>이라는 기사를 썼다. 말 그대로 올해 상반기, 언론이 가장 많이 직접 인용한 인물을 순위별로 나열하고 간략하게나마 분석하는 기사였다. 그런데 쓰는 것이 참 힘들었다. 조사가 힘들었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인물을 추리고 직접 인용 빈도를 조사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있었으니, 바로 누군가의 코멘트를 넣지 않는 일이었다.


기사에서 어떤 이의 말을 인용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는다. 위 기사의 경우 전문가의 분석이 들어간다면 객관성이나 전문성을 담보할 것 같았고, 한편으론 내 취재의 성실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름의 기준을 세워 조사를 수행했고, 사실상 어떤 인물이 왜 이 정도로 인용됐는지 가장 세밀하게 살핀 이는 나 자신이었지만 또 한 번 전문가의 힘을 빌려보고 싶었다. 어쩌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 전문가의 말로 기사를 끝내야만 속이 시원한(?) 관습이 또 한 번 작동했을지 모른다. 그나마 이 기사에서만큼은 직접 인용을 절대 사용하지 않으리라, 거듭 다짐한 이후에야 힘들게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나도 그런 수준이라 사실 직접 인용을 그저 많이 했다고, 언론사와 기자를 비판할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실제 직접 인용을 딱 잘라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직접 인용은 어떤 사안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는 장치이자 주장을 강화하는 방식, 한편으론 인물의 의지나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연구 결과와 기사들을 늘어놓고 봐도 ‘제목에 직접 인용을 너무 쓰지 말라’거나 ‘직접 인용을 자기 마음대로 각색해서 쓰는 행위’를 비판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다만 인물 순위를 나열해놓고 봤을 때 정치인 직접 인용은 너무 과도했다. 상위 50위 안에 무려 40명이 정치인이었다. 60위권을 들여다본 결과 만약 올해 상반기 코로나19가 터지지 않았다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났을 것으로 쉽게 예측이 가능했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분야별 기사와 인용문을 비교한 결과, 정치 기사가 다른 분야에 비해 인용문 비중이 확실히 컸다. 올해 1~6월, 빅카인즈에 기사를 제공하는 54개 언론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문화와 경제 분야는 기사 수에 비해 인용문 수가 각각 84.6%, 85.7% 수준이었고, 사회 분야는 100.2%, 정치 분야에선 무려 162.4%까지 치솟았다. 기사 수보다 인용문 수가 그만큼 더 많았다는 뜻이다.  


물론 정치인들의 말을 검증하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양적으로 따져봤을 때 정치인들의 말을 그저 받아쓴 기사가 더 자주 보였다. 특히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마감 시간이 없는 온라인 생태계, 또 난립하는 언론사들 간 경쟁도 치열하겠으나 빅카인즈에 기사를 제공하는 언론사들이 공신력 있는 곳들임을 감안하면 아쉽기만 한 결과다.


요즘 들어 언론의 취재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진영논리에 따른 말들이 많아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비판도 많지만, 그런 말들을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잘못된 관행들을 바꿔나가려 노력해야, 지적에도 힘이 실릴 수 있지 않을까. 다행히 최근 많은 언론사들이 취재보도준칙을 점검하고 더 엄밀한 취재윤리, 더 공적인 보도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자연스레 정치 보도에서도 정치인 중심의 직접 인용 보도, 갈등 조장 보도가 아니라 더 많은 분석과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한 고민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언론이 건전한 공론장을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앞으로 더 많이 보고 싶다.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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