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안정을 위한 보도인가, 부동산 시세 보도인가

[기자·전문가들이 말하는 '부동산 보도']
부동산 문제 정치화되며 더 주목… 시장 과열 못잖게 보도도 과열
극단적 사례 확대해석… 시장 안정화 기여보단 혼란·갈등 부추겨
서민들과 동떨어진 내용 부각… "시세 연연, 상위 0.4%만 바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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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달 17일 투기과열지구 확대와 대출 규제 강화 내용을 담은 ‘주택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주택 매매·임대 사업자의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등 고강도 규제를 통해 투기 수요를 막고 실소유자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부가 기대한 집값 안정 효과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되레 전월세 가격까지 상승세를 보이면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졌다.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다주택자 세 부담 강화와 주택공급 확대 등을 지시했다. 대통령이 직접 부동산 대책을 주문하는 모습에 언론도 부동산 문제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특히 청와대 참모진과 장관 등 정부 고위공직자 상당수가 다주택자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부동산이 정치적 이슈로 번졌다. 이후 부동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부동산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현 상황에 대해 “부동산 보도가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경제지의 부동산 담당 기자는 “현 정부 들어 지금처럼 종합지, 경제지 너나 할 것 없이 부동산 문제를 거세게 비판하는 상황은 거의 없었다”며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 의지가 시장에 먹혀들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과 여론이 장기적으로 집중하는 이슈가 없던 상황에서 전 국민의 관심사인 부동산 문제가 정치화되며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주목도가 높아진 만큼 불필요한 보도 경쟁 심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오랜 시간 부동산을 취재해온 또 다른 기자는 “부동산 시장도 언론 보도도 너무 과열된 상태”라며 “사내에서 부동산 기사를 많이 쓰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타사도 마찬가지이다 보니 보도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부동산이 정치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부 대책과 별개로 여야가 경쟁하듯 쏟아내는 부동산 법안에 시장은 혼란을 겪고 있다”면서 “매일 기사를 쓰긴 하지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담당 기자로서도 답답한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언론계 내부의 경제 분야 전문가들은 언론 보도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기여하기보다 혼란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사례를 시장 전반의 문제로 확대 해석하거나 대다수 서민들의 상황과 동떨어진 내용을 부각하고, 부동산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다주택자의 세 부담을 대폭 강화하는 ‘7·10 부동산 대책’을 다룬 언론 보도를 두고도 이 같은 비판이 나왔다. 김원장 KBS 경제전문 기자는 “우리 언론이 집을 130억씩 가지고 있는 분들을 참 많이 걱정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대책에 따르면 내년 6월부터 3채(조정대상지역 내 2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은 현행 0.6~3.2%에서 1.2~6.0%로 오른다. 종부세율 최고치인 6% 적용 대상은 시가 123억5000만원을 초과하는 주택 보유자다. 전체 인구의 0.4% 수준이다. 김 기자는 “7·10 대책을 보도하면서 ‘세금 폭탄’, ‘다주택자 숨통 조이는’ 같은 자극적인 표현으로 제목을 단다. 팩트 전달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며 “저도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오랫동안 비판해왔지만 우리 언론은 주택을 공공재적 시각으로 접근하기보다 시세에만 너무 연연하고, 0.4%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MBC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인 이진우 경제전문 기자는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언론사의 관점이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을 문제로 꼽았다. 이 기자는 “그동안 보수언론은 다주택 또는 주택의 소유에 대해 왜 죄악시하느냐는 논지를 펴왔다. 이 주장은 부동산 정책의 한 축을 이룬다”며 “그런데 이들 언론은 이번 정부 인사들이 다주택을 보유한 것에 대해선 비판하고 있다. 상대 정치세력을 ‘내로남불’식으로 흠집내기 위한 보도일 수 있겠으나 (부동산 정책에서도) 언론사는 일관된 논지를 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자 재직 시절 경제분야를 오래 취재한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언론사 스스로 부동산 정책의 목적과 방향성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 교수는 “우리나라 부동산 보도 양상은 수십년째 제자리다. 건설 경기를 부양해 언론사도 콩고물을 먹겠다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한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은 갈지자를 걸을 수밖에 없다”면서 “부동산 정책의 목적은 국민의 주거 복지 안정이다. 부동산이 소수의 손에 쥐어진 채 투기꾼들의 돈놀이판으로 남지 않도록, 언론은 정부와 의회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현실을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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