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조연운(籠鳥戀雲)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이재호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과거 덩샤오핑(鄧小平)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두 손을 다 써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쌍수 중 오른손으로 일단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되 아무래도 안 될 때에는 왼손 즉 무력을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홍콩 주권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 7월1일 홍콩에 큰 비가 왔다. 영국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첸치천(錢其琛) 중국 부총리는 그날 주권 반환식에서 “중국의 백년 치욕을 씻어내는 비”라며 환호했다. 홍콩에서 23년간 개최돼 온 7월1일 주권 반환 기념 집회가 올해 처음으로 금지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에 방해가 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홍콩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는 반중 시위가 격화할까 우려한 당국의 일방적 조치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중국은 20년 가까이 뜸만 들이던 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행 처리했다. 중국이 홍콩의 안보를 저해하거나 외국 세력과 결탁하는 활동이라고 판단하면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생겼다. 홍콩의 사법권 보장이라는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의 훼손이지만 중국 관영 매체는 제2의 주권 반환이라고 선전한다. 수많은 반중 인사와 민주화 세력은 벌써부터 전전긍긍이다. 중국은 홍콩 문제와 관련해 더이상 좌고우면하지 않고 ‘왼손’을 쓰기로 작심했다.


중국의 폭주에 서방 세계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 상원은 최근 홍콩 자치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는데, 홍콩 자치를 침해하는 중국 인사와 이에 관여한 금융기관을 제재하는 게 골자다. 더 강경한 대중 제재안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유럽연합(EU)과 영국, 호주 등도 각종 비난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중국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미국이 홍콩 보안법을 빌미로 대중 공세를 지속한다면 어렵게 합의에 이른 1단계 미·중 무역협상을 폐기할 수 있다는 강경론까지 거론된다.


왜 이 시점에 홍콩 보안법을 강행했는가. 9월 홍콩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반중파의 힘을 뺄 필요가 있어서, 미국이 대선 시즌이라 중국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워서, 코로나19 책임론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지난해 6월부터 본격화해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홍콩 내 반중 시위가 중국의 역린을 건드렸다. 홍콩 문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핵심 이익이자 주권의 영역이라는 게 중국 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더이상 홍콩 변수로 서방 세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홍콩이 지닌 전략적 가치 때문에 중국은 홍콩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게 그동안 서방 세계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대외무역 거점이자 안정적인 외자 유치 플랫폼이며 위안화 국제화의 교두보라는 등등의 이유였는데 돌이켜 보면 참으로 안일했다. 지난달 홍콩 보안법 제정을 저지하기 위해 홍콩에서 진행된 총파업 찬반 투표 결과는 충격적이다. 파업에 돌입하기 위해 6만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는데 투표 참여 인원 자체가 1만명 미만이었다. 동맹 휴학을 위한 학생들의 투표 참여도 저조했다.


홍콩 젊은이들의 피는 여전히 뜨겁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홍콩 시민들의 피로감도 상당하다. 시위 장기화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올 1분기 홍콩의 경제 성장률은 -8.9%까지 추락했다. 긴 병에 효자 없듯, 민생고에 지친 탓에 홍콩 내 반중 시위의 동력이 점차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미국 등 서방 세계의 압박에 밀려 중국의 홍콩 보안법 제정이 없던 일이 되길 기대하는 것도 백년하청(百年河淸)일 뿐이다.


시진핑(習近平)은 국가부주석 시절인 2008년 중국의 인권 탄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새장 속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면 제일 시끄러운 놈을 들어내면 된다”고 일축했다. 국가주석에 취임한 뒤에는 “권력은 새장 안에 넣어야 한다”며 중앙 집권 강화를 천명하기도 했다. 이제는 홍콩을 거대한 새장에 가두려 한다. 새장 속 새가 구름을 그리워하듯 속박 속에서 자유를 그리워하는 농조연운(籠鳥戀雲)의 삶이 머지않다. 암울한 ‘뉴 노멀’에 직면한 홍콩인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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