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채 1기' 1호 정년퇴직… "후배들, 사명감 갖고 전문성 있는 기사를"

[인터뷰] 강덕균 전 전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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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전남일보 지하 1층 승정문화관에서 강덕균<사진> 기자의 퇴임식이 열렸다. 이날은 강 기자 개인에게도, 전남일보에게도 역사적 순간이었다. 강 기자는 1988년 공채 1기로 입사해 32년간 적을 둔 회사와 작별하는 날이었고, 전남일보는 제1호 정년 퇴직자를 갖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퇴임식장엔 강 기자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렸고 편집국뿐만 아니라 거의 전 직원이 참여해 그의 퇴임을 축하했다. 강 기자는 “시원하기도 섭섭하기도 하다”며 “자기 인생 돌아볼 시간도 없이 참 바삐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쉬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강덕균 전남일보 기자가 지난 4일 전남일보 승정문화관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꽃다발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건호 전남일보 기자 제공

▲강덕균 전남일보 기자가 지난 4일 전남일보 승정문화관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꽃다발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건호 전남일보 기자 제공


우연찮게 언론사 입사 시험을 보고 기자가 됐지만 강 기자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기자 생활을 했다. 서부취재팀장을 맡은 시절엔 바다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생각해 기자 두 명과 팀을 짜 집중적으로 바다를 취재, 지난 2005년 <전남해안 6000km 생태보고>로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사회부장, 정치경제부장을 거쳐 편집국장까지 맡은 후엔 논설실에 앉아 있기 싫다며 남들이 고사하던 서울로 올라와, 지난 8년간 청와대와 국회를 출입하며 시야를 전국으로 넓혔다. 이 시절 호남향우회를 본격 취재해 최근 ‘산업화·민주화시대, 우리는 주역이었다’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지난 30여년간 기자 생활을 하며 강 기자는 자연스레 지역 언론의 고락도 지켜봤다. “봉급도 괜찮았고 광고도 빵빵했던” 시절을 지나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1년간 순환 휴직을 했던, 가장 어려웠던 때를 그는 생생히 기억했다. 지역 언론이 점점 어려워지며 급여가 적어지고 취재 환경이 열악해져 수많은 인재를 놓치는 것도 안타깝게 생각했다. 강 기자는 그럼에도 “후배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좋은 기사를, 전문성 있는 기사를 썼으면 한다”고 바랐다.


강덕균 전남일보 기자가 지난 4일 전남일보 승정문화관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나건호 전남일보 기자 제공

▲강덕균 전남일보 기자가 지난 4일 전남일보 승정문화관에서 열린 정년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나건호 전남일보 기자 제공


그는 조만간 전기자전거로 전국 여행을 다닐 계획이다. 원래는 세계여행이 꿈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잠시 보류했다. 강 기자는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 첫 목표로 잡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우선 국내를 돌아볼 생각”이라며 “대학생 시절 전국 자전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예전만큼 페달을 밟지 못하니 전기자전거로 다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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