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지상파 메인뉴스서 수어통역 제공하라"

장애인권단체 차별진정 받아들여
방통위에도 수어통역 의무 비율 개선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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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지상파방송사 메인뉴스에서 수어 통역을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는 관련 고시 개정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장애인권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장애벽허물기)이 낸 차별 진정을 받아들여 이같이 결정했다. 인권위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는 지난달 결정문에서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에 농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메인뉴스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한국수어통역을 제공할 것과 방통위가 ‘장애인방송 편성 및 제공 등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 개정 등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권고했다.

장애벽허물기는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뒤에도 장애인 방송접근권 보장에 관한 고시가 여전히 지상파방송 수어통역 의무 비율을 5%로 규정하고, 지상파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농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지난해 인권위에 차별 진정을 냈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다른세상을향한연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2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수어통역을 통한 방송시청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인권위 결정문에 따르면 KBS는 진정 내용에 대해 “청각장애인들이 뉴스를 통해 다양한 소식을 접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에 따라 수어방송과 자막방송을 병행해서 실시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TV 화면이라는 공간의 제약성 탓에 안타깝게도 모든 방송에 수어방송을 실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MBC 역시 낮 시간대 뉴스와 대부분의 뉴스특보에서는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뉴스데스크에서 수어통역을 하지 않는 것은 화면 하단 자막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뉴스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이 공간을 수어에 내어줄 경우 비장애인 시청자의 시청권 제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청자에게 보다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이 제한될 수 있다”고 고충을 밝혔다.

SBS도 “기술적 여건과 화면구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8뉴스의 수어통역방송을 제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다만, 8뉴스를 비롯한 모든 보도 프로그램에서 폐쇄자막방송을 100%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2019년 기준 지상파 3사가 의무 편성 기준(5%)보다 높은 비율로 수어방송을 제공하고 있으며(KBS 8.87%, MBC 7.45%, SBS 7.1%),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 대신 폐쇄자막을 제공 중인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지상파방송사들이 다른 시간대 뉴스와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뉴스특보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고 있는 점, 수어통역으로 인한 화면 일정 부분의 가림은 비장애인에게 내용 자체를 전달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한 정도인 점 등에 비춰볼 때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메인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제3항은 방송사업자 등에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동등하게 제작물 또는 서비스를 접근·이용할 수 있도록 폐쇄자막, 한국수어 통역, 화면해설 등 장애인 시청 편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인권위는 방통위가 수어통역방송 의무 비율 5%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되어야 할 농인의 방송접근권 등을 합리적 이유 없이 제한하고 있는 것”이라며 “장애를 이유로 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헌법 제11조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방통위는 앞서 인권위에 전달한 입장문에서 “의무편성비율 확대 및 특정 방송프로그램에 장애인방송 편성을 강제하는 것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주시청시간대 보도프로그램의 수어방송 편성 등 청각장애인의 보편적 시청권 확보를 위하여 유관단체, 방송사업자 등과 지속적으로 노력하겠고, 2019년부터 스마트 기기에서 음성을 자막-수어로 자동 변환하는 사업을 수행해 5년 내 상용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위 결정문에 대해 장애벽허물기는 22일 성명을 통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진정 권고를 받은 지상파방송사와 방송통신위원회에 인권위원회의 권고를 겸허히 수용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지상파방송사의 수어통역 비율을 단계적으로 30%까지 확대가 될 수 있도록 장애인방송고시 개정 등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촉구하며 “이를 통하여 농인들이 수어로 방송을 볼 권리가 확대되고, 더 나아가 방송 등 미디어를 농인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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