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표현 퇴출 위해 언론이 힘 모을 때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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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 현업단체가 날로 심해지고 있는 미디어 속 혐오표현 문제를 직접 해결하고자 나섰다. 지난 1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도한 ‘혐오표현 반대 미디어 실천선언’에 한국기자협회·방송기자연합회·한국인터넷기자협회·한국PD연합회·한국아나운서연합회·한국방송작가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 등 국내 미디어를 대표하는 9개 단체가 참여한 것이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미디어 종사자들은 막중한 저널리즘의 책무와 윤리의식 아래 혐오표현, 나아가 어떠한 증오와 폭력의 선동에도 반대한다”며 앞으로 관련 보도 시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정치인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혐오표현을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대표적 ‘문제아’로 지목돼온 언론이 지금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나선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동안 언론은 정치인 등이 이목을 끌기 위해 마구 내뱉는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혐오발언을 ‘따옴표’로 여과 없이 전달하며 혐오를 키워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쏟아지는 혐오발언이 과연 대중에 전달될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런 ‘막말’ 뒤에 숨은 다른 목적은 없는지를 누구보다 잘 살펴야 했던 언론이 인용부호 뒤에 숨어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았던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한편으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혐오표현이 늘어나는 가운데 적절한 대응책을 찾지 못해 고민했던 언론도 많았을 것이다. 혐오발언을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걸 알면서도 양쪽 의견을 고루 싣는 ‘균형보도’를 해야 한다는 균형 잃은 강박에 사로잡혀 극단적이고 차별적인 반대 주장을 그대로 싣는 일이 대표적이다. 또 유명인의 과격한 발언이라는 ‘뉴스거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치도 없는 혐오발언에 따옴표를 붙여 보도한다거나 특정 혐오표현이 가진 맥락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사안에 접근해 문제를 키운 기사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미디어 속 분별없이 사용돼온 혐오표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혐오표현에 대한 명확한 반대 원칙을 밝힌 이번 선언은 묘안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했던 언론에도 반가운 일이 될 것이다.


이번 선언에는 미디어 종사자들이 혐오표현의 개념과 맥락, 해악 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표현 적극 대응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의 혐오표현에 대한 엄격한 시각 △왜곡된 정보는 팩트체크를 통해 비판적 전달 △역사적 사실 부정 발언 지적 등 총 7가지 실천사항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종북’이나 ‘맘충’ 등 특정 인물이나 집단에 낙인찍는 용어를 미디어에서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보도하는 일은 자칫 사회가 혐오표현을 용인하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가 될 수 있으므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식이다. 또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일부러 혐오표현을 하는 ‘막말’에 대해서는 그 말을 그대로 중계하기보다 배경과 맥락을 파악해 비판적으로 전달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쓰고 있다.


혐오표현은 단순히 ‘기분 나쁜 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집단의 인권을 침해하고 깊은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범죄나 다름없다. 혐오표현이 사회적 차별에 바탕을 둔 배제와 억압을 정당화해 사회 통합을 저해하는 등의 실질적 해악을 끼친다는 주장도 있다. 이번 선언은 바로 이 같은 혐오표현의 미디어 퇴출을 위한 본격적인 첫 걸음이다. 언론이 객관 보도라는 이름 아래 혐오표현을 중계하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혐오표현의 해악을 명확히 전달해 건강한 사회를 회복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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