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졌으니 보도한다 안돼...죽음에 어떤 의미 부여할지 기자판단 중요"

'자살예방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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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 해 우리나라에선 1만367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년대비 1207명이 늘어 9.7%가 증가한 결과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6.6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를 다툰다. 이 같은 현실에 언론 보도의 책임은 없을까.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자살예방권고기준 제정과 이후 노력이 겹치며 변화의 조짐은 있었지만 여전히 언론의 책임과 임무는 남아있다. 이날 전국에서 참석한 언론사 논설위원 및 데스크급 기자 30여명은 발제를 듣고 열띤 토론을 이어가며 더 나은 자살예방 보도를 위한 고민을 나눴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한 전국 언론사 논설위원 및 데스크급 기자 30여명이 단체 사진촬영에 임한 모습.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참석한 전국 언론사 논설위원 및 데스크급 기자 30여명이 단체 사진촬영에 임한 모습.


올해 첫 번째 세션의 주제는 ‘유가족 관점으로 본 자살보도와 알권리’였다. 언론보도를 하는 입장에서 유가족의 범위는 난제다.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도 담겼듯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해야한다”는 항목엔 모두가 동의하지만 그 범위는 구체적이지 않다. 

이와 관련 현행법은 민법과 언론중재법 등에 따라 유가족 범위를 조금씩 달리 정하고 있다. 발제를 맡은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 소장(변호사)은 “(기자들의 경우) 언론중재법 범위인 죽은 사람의 배우자와 자식, 부모, 형제자매 정도를 유가족으로 보면 사회통념에 반하지 않을 듯하다. 자살보도를 할 때 이 범위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언론중재법에서 유가족은 배우자와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들은 사망한 사람의 인격권이 언론보도로 침해되거나 망인에 대한 추모감정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지할 수 있는 권리가 훼손됐을 때 구제절차 등을 하는 당사자로서 언론과 연관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살 관련 보도는 명쾌한 규범을 넘어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띤다. 개인적 사건을 넘어 사회적 사건인 자살도 있을 수 있어서다. 현재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에선 제외된 “사회적 문제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보도를 이용해선 안 된다”는 조항 등은 그래서 논쟁적일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알권리’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재 법원은 ‘알권리’를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와 ‘(언론 등이) 알릴 수 있는 권리’로 구분해 보는데 특히 전자를 강조하고 있다. 어떤 기사가 공익 또는 사회 공공선에 기여하는지,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를 위한 것인지를 중시한다는 의미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소장이 발제하는 모습.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양재규 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소장이 발제하는 모습.


양 소장은 “모든 자살이 똑같은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 언론의 기사화 과정은 그 자체가 자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종의 사회적 해석과정이다. 일률적으로 말하기 쉽지 않다”면서 “현재 사법체계 하에서 법원은 ‘알권리’를 ‘알릴 수 있는 권리’보다 ‘알아야 할 권리’로 이해한다.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를 위한 기사였는지를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자살 보도 역시 이 부분이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물론 자살보도에 항상 전제될 지점은 명확하다. 유족들을 “현존하는 자살 사건의 주체”로서 “법적, 윤리적,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권리”로 보는 것이다. 쉽지 않은 문제에 대한 답은 온전히 기자들에게 달린 측면이 크다. 양 소장은 “언론에겐 유가족을 존중할 법적, 윤리적, 사회적 의무와 책임이 있다”면서도 “결국 규범은 이렇지만 자살보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살의 성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등 문제는 기자들 스스로의 몫과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했다. 

김영욱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초빙교수가 발제한 두 번째 세션은 ‘자살보도가 자살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뤘다. 김 교수는 “자살을 보도해야 할 필요성과 정당성이 있다. 동시에 미디어를 통해 매개되거나 전염될 수 있어 위해성과 부담성을 안게 되는 데 딜레마가 있는 것”이라며 기자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자살보도와 관련해 언론을 통해서 지속 반복되는 문제제기는 모방자살이다. 실제 김 교수 발제에 담긴 2013년 중앙자살예방센터 자료에 따르면 유명 연예인의 자살사건 후 전체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예컨대 고 최진실씨가 사망한 지난 2008년 10월 이후 2개월간 자살자 수를 이 시점 기준 한 해 전과 한 해 후 동기간 평균과 비교하면 자살증가 효과 추정치는 1000여명이 넘는다. 자살방법에 대한 보도 후 해당 방법을 통한 죽음이 확연히 늘어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자살보도량과 자살률이 인과관계인지, 상관관계인지는 명확지 않다. 자살보도가 늘어 자살률이 높아졌을 수도 있지만 자살률이 늘어 자살보도가 늘었을 수도 있다. 다만 자살보도 건수와 자살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하면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사건이 있으니 보도한다’라고 해선 안 된다. 실제 언론에선 10대 자살률은 숫자가 작아도 많이 보도하는 등 뉴스가치를 판단해 보도한다. 보도에 가치가 있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판단하고 자살보도 역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 기사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염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김영욱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초빙교수가 제2세션 발제를 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김영욱 KAIST 과학저널리즘대학원 초빙교수가 제2세션 발제를 하고 있다.



이날 김영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센터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 및 질의응답’에는 발제자와 박진국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차장, 신은정 중앙자살예방센터 부센터장, 이승용 MBC 논설위원 등이 참여해 견해를 밝혔다. 

박진국 부산일보 차장은 “자살은 사적 영역이지만 이어지고 이어져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반복된다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언론이)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부산에서 지하철 투신자살이 늘어 스크린도어를 설치하도록 하는 데도 대책 마련을 위해 자살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적 문제로 발전하는 자살을 막기 위해서도 자살보도는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자살보도 권고기준을 지키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권고기준이 변해왔듯 이제 언론의 자살보도도 수동적으로 이를 따르는 게 아니라 자살을 제도적으로 저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사회적 관심을 제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발제를 마친 토론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가 공동주최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3.0과 한국사회 자살문제 현안' 세미나가 12일 제주 KAL호텔에서 열렸다. 발제를 마친 토론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이승용 MBC 논설위원은 “2018년 자살률이 10%가까이 늘었다는 건 의미심장한 거 같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송파 세모녀 사건 등으로 온 국민이 공감하고 연대의식을 가지고 사회 안전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는데 지난해엔 여러 굵직한 뉴스가 터져 나오며 정작 사회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나 연대감은 준 게 아닌가 싶다”면서 “자살보도량에 따른 ‘베르테르 효과’를 의식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우리 언론이 해야될 일은 사회적 타살로서 자살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고립되고 외로워진 개인들에게 사회안전망 등을 어떻게 복구시키고 문제제기하는지라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쁜 자살보도를 안하는 차원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자살예방 권고기준 4.0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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