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뉴스 개편하고나니… 스트는 뜨고 기획은 지고

['에어스' 자동 추천 뉴스의 명암]
AI 편집과 클러스터링 때문에 심층 기획 묻히고 실시간 이슈 소비만 늘어
언론 의제설정 기능 약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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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뉴스 편집에서 완전히 손을 뗀 지 약 두 달이 지났다. 네이버는 지난달 4일 PC와 모바일 전체에서 자체 뉴스 편집을 종료하고 AI에 기반한 자동 추천 시스템으로 전면 개편했다. 이에 따라 네이버의 모든 뉴스는 이용자가 구독 중인 언론사가 직접 편집하는 영역과 에어스(AiRS)가 자동 추천한 뉴스 영역으로 구성된다.


네이버는 지난달 2일 보도자료에서 “에어스를 통한 기사 추천 서비스를 도입한 후, 이용자 당 기사 소비량이 30% 가량 증가하는 등 콘텐츠 소비가 더욱 활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AI 편집과 클러스터링(유사한 기사끼리 묶어냄) 때문에 언론사의 심층, 기획 기사가 묻히고 실시간 이슈 중심의 스트레이트 기사 소비만 늘었다는 볼멘소리가 언론사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의미있는 고발성 기사가 설자리를 잃으면서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은 약해지고 저널리즘이 황폐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네이버는 지금 스트레이트 전쟁 중”
지난 8일 배우 한지성씨가 인천공항고속도로 2차로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가 다른 차량에 치여 숨졌다는 소식이 종일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궜다. 이날 네이버 사회 분야 가장 많이 본 뉴스 1위부터 10위까지는 사고 소식으로 도배됐다. 이 뉴스는 다음날에도 사회 분야 뉴스 톱10 중 9건을 차지했고, 이후 12일까지 닷새 동안 쭉 상위권을 기록했다. 지난 10일에는 만화가이자 방송인인 기안84가 웹툰에서 청각장애인을 희화화했다는 논란이 생활/문화 분야 많이 본 뉴스 톱5를 장악했다. 12일에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썼다는 보도가 정치 분야 톱 1~4위에 올랐다.


네이버 뉴스 개편 이후 이처럼 비슷한 내용의 기사들이 트래픽을 끌어모으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정치인의 욕설이나 막말과 관련한 논란을 단순 전달하는 기사가 정치 분야 상위권을 차지하고, 최신 휴대폰 출시 소식을 전하는 홍보성 기사들이 IT/과학 분야 많이 본 뉴스를 도배하기도 한다. 같은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를 클러스터로 묶고 이를 이용자들의 관심 뉴스로 추천하는 알고리즘 편집 때문이다.


자동 클러스터링은 이번 네이버 뉴스 개편의 핵심이다. 네이버에 따르면 클러스터링 주제와 순서는 이용자의 콘텐츠 소비 성향과 관심사에 따라 달라지며, 각 클러스터링의 대표기사도 이용자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로그인하지 않은 이용자들에게는 다수의 관심사에 근거한 상위 7개의 클러스터링 기사가 동일하게 제공된다. 같은 주제라도 대표기사가 개인별로 다르게 나타나니 트래픽이 분산되는 효과는 있지만, 단순히 이용자의 관심을 많이 끈 뉴스가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부작용도 있다. 언론사로선 같은 키워드가 들어가지 않으면 클러스터로 묶여 추천되지 않으니 다른 언론이 많이 쓰는 기사를 따라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스트레이트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방송사 디지털부서 담당자는 “키워드를 따라가는 경향이 굉장히 강해졌다”며 “스포츠와 연예 기사 소비가 많아졌고 실시간 이슈와 속보를 따라가는 게 중요한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알고리즘 편집에 기획 기사 힘 잃어
반면 언론사의 기획 기사나 심층 보도는 좀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언론사의 개성과 차별성이 드러나는 기획 기사의 경우 다른 언론사가 받아쓰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클러스터로 묶이지 않고, 추천 뉴스로 편집될 가능성도 낮다. 네이버가 자체 뉴스 편집을 할 때는 언론사의 기획 기사 등을 정성적으로 판단해 메인에 노출하기도 했지만, AI 추천으로 전면 개편된 뒤로는 해당 언론사를 구독하지 않는 한 기획 기사를 접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일보의 감각적인 편집이 돋보이는 멀티미디어 콘텐츠 ‘뷰엔’의 경우 네이버 개편 전만 해도 하루 페이지뷰(PV)가 80만 정도였는데, 개편 이후 10만뷰 수준으로 급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화제를 모은 ‘쪽방촌’ 기획 기사 역시 네이버에서는 거의 읽히지 않았다. 기자가 직접 요양보호사로 일한 체험기를 담은 한겨레 창간기획 ‘대한민국 요양보고서’도 네이버 뉴스 메인에는 거의 노출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종합일간지 한 부장은 “네이버에선 기획 기사를 사실상 포기했다”면서 “이러다 기획 자체를 안 하고 옛날처럼 검색어 기사만 쓰면서 팩트 한두 개 추가한 기사만 의미 없이 써대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종합일간지 편집국장도 “공들인 기획 기사는 안 읽히고 정치인의 막말 같은 기사만 많이 읽히니 힘이 빠진다”며 “이게 저널리즘의 맞는 길인가”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알고리즘은 변화 중…자체 플랫폼 강화움직임도
일각에선 네이버의 알고리즘이 계속 변하고 있는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용자들의 뉴스 소비 패턴 등을 분석해서 기사 노출과 검색 매칭률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한다. 김창효 경향신문 모바일팀장은 “결국엔 기사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 좋은 기사를 쓰는 게 네이버 체제에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며 “파급력이 큰 기사, 다른 언론사가 따라올 수 있는 기사를 써야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플랫폼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이번 네이버 개편 이후 트래픽이 급감한 방송사와 통신사는 자체 브랜드와 플랫폼 강화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연합뉴스 한 관계자는 “결국엔 자체 플랫폼을 강화해야 한다”며 “우리 앱들로 사람들이 오게 하는 작업을 내부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SBS 역시 모바일 홈페이지 개편을 준비하는 한편, 뉴스레터 서비스를 포함한 구독 모델에 대해서도 두루 검토 중이다. 최연진 한국일보 디지털콘텐츠국장은 “네이버 말고도 우리 기사를 유통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이다. 유통채널을 늘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차제에 지나친 네이버 의존도를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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