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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 여전했지만, 자성 목소리에 ‘즉각 사과’ 변화 보여

‘정준영 사건’ 관련 기사들 통해 본 한국언론 성범죄 보도 명암

김달아 기자2019.03.20 13:39:42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유포 사건으로 성범죄를 보도하는 언론의 나쁜 관행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일부 매체는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노출하는 등 2차 가해에 앞장서기도 했다. 다만 언론사 내부에서 자사 보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거나, 보도를 향한 비판 여론을 수용해 즉각 사과하는 모습에서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1일 SBS는 정준영씨의 성범죄 사실을 처음 보도했다. 정씨가 불법 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연예인들이 포함된 카톡방에 전송했고 피해자가 최소 10명이라는 내용이었다. 보도 직후 정씨에게 이목이 쏠렸다. ‘정준영 동영상’이 검색어에 올랐고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성범죄 사건을 다루면서 피해자를 부각하는 보도행태는 여전했다. 지라시를 통해 피해자라고 언급된 여성 연예인들의 신상을 노출하는 등 2차 가해 보도도 이어졌다. 채널A는 지난 12일 저녁 메인뉴스 ‘뉴스A’에서 피해자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다수 포함한 리포트를 내보내면서 단독을 붙였다. 동아일보도 13일자 12면에 같은 기사를 실었다. 이날 TV조선의 시사토크 프로그램 ‘보도본부 핫라인’은 지라시에 피해자로 거론된 여성 연예인들의 얼굴 사진을 그대로 방송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언론이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유포 사건을 보도하면서 2차 가해에 앞장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내외부 지적을 즉각 수용하는 모습에서 이전보다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진은 정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4일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언론이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유포 사건을 보도하면서 2차 가해에 앞장섰다는 비판이 나오는 한편 내외부 지적을 즉각 수용하는 모습에서 이전보다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진은 정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4일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는 모습. /연합뉴스


이봉우 민주언론시민연합 모니터팀장은 “채널A·동아일보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너무 많이 제공했고, TV조선은 이 사건과 관계없다고 해명한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과 사진을 수차례 노출했다”며 “두 언론사뿐 아니라 피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입장을 어뷰징하듯 무분별하게 기사화하는 것도 명백한 2차 가해성 보도”라고 지적했다.


2차 가해라고 비판받은 위의 기사와 방송은 현재 온라인에서 삭제된 상태다. 내외부의 지적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채널A 기자협회는 해당 보도 다음날인 13일 보도본부장을 향해 “기사 출고 과정에서 취재기자가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 수차례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유감을 표한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보도본부 차원에서 (한국기자협회·여성가족부의) 성폭력성희롱 사건 보도 실천요강을 공유할 수 있게 조치해주길 바란다. 인터넷상에서 해당 기사의 완전한 삭제를 요청드린다”고 입장을 전했다.


채널A는 기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사를 삭제하고 시청자에게 사과했다. 이날 메인뉴스를 시작하면서 “(정준영씨 수사를 다룬 보도가) 자칫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초점이 맞춰질 수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며 “시청자 여러분의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앞으로 피해자 보호에 더욱 유의하고 보도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도 문제가 된 방송 다음날인 14일 “(루머에 언급된) 여성 연예인들이 이를 부인하는 공식 입장을 냈기 때문에 실명으로 보도했으나 이것 역시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이 있었다”며 “다시보기에서 해당 방송 부분을 즉시 삭제했다. 저희 생각이 짧았던 점, 시청자 여러분과 해당 연예인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관성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긴 어렵지만, 대형 언론사들이 비판을 받아들여 신속히 사과·정정하는 태도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처음 보도한 SBS 등 여러 언론사가 2차 가해 문제를 강조하는 보도를 잇달아 내놓는 것도 변화한 모습이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부소장은 “언론사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등 작은 변화가 느껴졌다”며 “언론이 2차 가해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언론계 전체가 조직문화 개선, 강력한 내부 규칙 마련과 실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정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기획협력팀장은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 남았던 과거에 비해 우리사회의 의식수준은 높아졌다”며 “언론 또한 더 이상 2차 가해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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