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와 가짜정보를 도매금 취급하는 정부·정치권

정부 '가짜뉴스와 전쟁' 선포… "오보·정정도 저널리즘적 기록, 분명한 정의는 없고 처벌만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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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 실태와 대책에 대해 언급했다. /뉴시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회의 시작을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 실태와 대책에 대해 언급했다. /뉴시스


가짜뉴스가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지난 2일 이낙연 총리가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등 유관기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8일 정례간담회에서 가짜뉴스 집중 단속을 벌일 방침이라 밝혔고 한 차례 미뤄졌지만 범정부 차원의 허위조작정보 근절 방안도 향후 발표될 예정이다.


가짜뉴스는 SNS를 통한 뉴스 유통이 확대되고 기존 뉴스미디어의 신뢰도가 하락함에 따라 소비가 증가해왔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사회적 문제가 된 이후 국내에서도 지난 대선 때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가 커져 그 과정에서 다수의 가짜뉴스 규제 법안들이 발의됐다. 지난해에만 가짜뉴스 관련 법안이 10여개 발의됐고 올해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5개가 넘는 관련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들 법안은 이낙연 총리가 “조속한 입법조치”를 주문한 상황에서 향후 가짜뉴스 규제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대부분 가짜뉴스의 유통을 효과적으로 방지한다며 특정 책임자에게 가짜뉴스 판별 권한이나 유통 방지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어기는 대상을 처벌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문제는 법안마다 가짜뉴스의 정의가 제각각이고 상당수가 언론 오보를 가짜뉴스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데 있다.


지난 4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가짜정보 유통 방지에 관한 법률안’이 한 예다. 이 법안은 언론사가 유통한 정보 중 정정보도 등을 통해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인정한 정보를 가짜정보로 규정했다. 지난 5월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발의한 ‘가짜뉴스대책위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도 신문·방송·인터넷신문 또는 정보통신망에서 생산된 거짓 또는 왜곡된 내용의 정보를 가짜뉴스로 정의했다.



언론계 학계 등에선 오보와 가짜뉴스를 동일선상에 놓는 이런 시선에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신문협회는 법안에 대한 협회 의견 등에서 “게이트키핑 등 중층적인 확인 절차를 거쳐 생산한 언론사의 기사는 비록 오보라 할지라도 SNS 등에서 출처나 근거 없이 떠도는 가짜뉴스와는 분명히 구별된다”며 “오보 및 오보의 정정 과정 또한 엄연한 ‘저널리즘적 기록’으로서 언론 현상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9일 논평을 내고 “표현규제는 대상이 모호하면 과잉규제를 초래하기 때문에 규제대상이 명확해야 한다”며 “가짜뉴스가 무엇인지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처벌강화는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언론 오보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영역에서 뉴스 형식으로 허위정보를 퍼트리는 것 역시 정부의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가짜뉴스가 언론 영역으로서 기사 품질의 문제라면 언론인끼리 사실 검증 보도를 하고 비판이나 논평으로 해결하면 된다. 만약 카카오톡 대화방이나 유튜브 등에서 자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시민사회의 영역이라면 이것은 더욱 정부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며 “시민들의 무지든 개인과 집단의 욕망이든 그런 의견을 퍼트리는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누가 검증하고 입증할 수 있나. 정부가 가짜뉴스라는 가짜 이름을 붙여 헛발질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전문가들은 가짜뉴스가 인격권을 침해하는 등 위법한 내용이라면 현행 실정법으로도 충분히 규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4월 ‘신문과 방송’ 기고에서 “가짜뉴스를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공직선거법, 전기통신기본법 등으로 규율할 수 있다”며 “규제를 하더라도 그 개념을 한정해 논의할 필요가 있고 ‘누가’ ‘무엇이’ 가짜인지 ‘어떻게’ 판단하느냐도 어려운 문제다. 가짜뉴스를 판별해내는 것이 권력을 가진 소수에 의해 오용 또는 남용될 경우 사회적으로 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선 뉴스 생산자와 뉴스 이용자, 뉴스 매개자 등의 자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에서의 사실 확인 보도나 시민사회의 모니터가 늘어나고 있고 사람들 인식도 바뀌면서 가짜뉴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추가로 가짜뉴스 관련 법률을 제정하기보다 있는 규정을 보완해 가짜뉴스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을 구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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