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큰 미디어 재편기에 서 있다"

[글로벌 리포트 | 미국]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뜨겁게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지상파 3사의 중계를 IPTV, 케이블TV나 인터넷 포털을 통해 시청하는 시청자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집에서 유료방송(케이블TV, IPTV)을 끊는 시청자(일명 코드 커터)가 늘어나면서 필요한 방송만 골라서 보는 유튜브TV, 슬링TV 등 묶음 채널(스키니 번들) 서비스 시청자도 제법 많아졌다.


잘 안보는 100~200개 채널 대신에 꼭 필요한 채널만 담은 ‘스키니 번들(skinny bundles)’은 슬링TV가 시장을 개척한 후 구글 유튜브TV가 본격 뛰어들면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모바일 스트리밍 혁명을 일으켜 글로벌 미디어 지형을 바꿔놓았다. 넷플릭스는 한해 80억달러(약 8조원)를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다. 비스포츠 콘텐츠 회사 중에는 전 세계 어떤 회사보다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가입자는 현재 1억2500만명이지만 오는 2030년까지 3억60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넷플릭스가 뿌리내린 콘텐츠 소비 방식(스트리밍, 멀티 스크린, 몰아보기)이 자리잡게 되자 이제 관심사는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옮겨가고 있다. 실제 넷플릭스의 경쟁사로 평가받는 ‘훌루(Hulu)’는 지금 라이브 TV를 내놓고 러시아 월드컵 중계로 가입자들을 유인하는 중이다.


셋톱박스형 매체(케이블TV, 위성방송, IPTV) 들은 ‘구시대 유물’이 됐다. 이들은 해지도 힘들고 모바일에서도 보기 힘들며 TV와 연결(테더링)도 안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10~20대 젊은 세대는 왜 콘텐츠를 셋톱박스형 매체를 통해 봐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0세기 미디어 황제이자 글로벌 미디어의 대명사 루퍼트 머독은 지금이 매각(exit)의 적기임을 직감했다.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애플 등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보다 이용자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거나 그들보다 콘텐츠에 더 투자할 수는 없다고 봤다. 넷플릭스만 80억달러 투자를 하는데 아마존도 50억달러, 페이스북 애플도 최소 10억~15억달러를 1년에 투자한다고 공언했다. 넷플릭스는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을 콘텐츠 제작사로 영입했고 애플은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와 스티븐 스필버그, 아마존은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 제작 콘텐츠에 각각 투자했다.


이들은 예전엔 루퍼트 머독 가문이 소유한 매체에 출연하기 위해 줄을 섰다. 하지만 지금은 콘텐츠 제작자들이 실리콘밸리로 간다. 즉,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의 2개 축인 디지털 광고와 가입자 모두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으로 무게 중심이 완전히 넘어간 것이다.


루퍼트 머독은 원안대로 524억달러에 디즈니에 매각하느냐 659억달러로 가격을 올린 컴캐스트에 매각하느냐의 결정이 남아 있을 뿐이다. 20세기 폭스 영화사 및 TV 스튜디오, 위성방송 스카이, 훌루 지분(30%) 등을 보유한 21세기 폭스 그룹은 몸값이 가장 높을 때 매각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이에 앞서 CNN과 HBO,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등 킬러 콘텐츠를 보유한 ‘타임워너’는 지난 2016년 12월 AT&T에 같은 이유로 매각을 결정했다. 지난 14일 법원이 AT&T와 타임워너의 850억 달러(약 91조6300억원)에 합병하는 안을 조건없이 승인하면서 즉각 유효한 계약이 됐다. 타임워너 인수가 법원으로 부터 최종 결정되자 AT&T의 랜달 스티븐슨 CEO가 바로 다음날 15달러 짜리 ‘스키니 번들’을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은 재빠른 움직임이라 평가받고 있다.


경쟁 구도가 고착돼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 미디어 지형은 ‘전쟁’이란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큰 변화가 오고 있다. “역사상 가장 큰 미디어 산업의 재편을 보고 있다”란 말이 나올 정도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정부 정책과 규제, 매체(지상파, 종편, 신문, 포털 등) 중심 사고보다 이용자 행태 변화와 시장의 흐름, 데이터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해졌다. 한국도 이 흐름에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미디어 이용자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손재권 매일경제 실리콘밸리 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