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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분단‧평화‧인권과 맞닿아있다"

[지역언론 리포트] (4)제주도

김달아 기자2018.04.18 01:21:37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추모비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0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추모비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화의 섬 제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018년은 제주 4·3 70주년입니다.”


‘4·3’을 일주일 남짓 앞두고 제주를 찾은 지난달,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제주도가 4·3 70주년을 맞아 항공사들에 협조 요청한 멘트였다. 이를 받아들인 항공사는 이스타항공·제주항공·티웨이항공뿐. 대형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4개사는 ‘이념·타지역 형평성’을 이유로 제주도의 요청을 거부했다.


4·3은 1948년 4월3일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공식 집계된 희생자는 1만4000여명이지만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량인 3만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전쟁 다음으로 가장 큰 민간인 인명피해다.


그러나 반세기 넘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피해자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념적 잣대로 평가되며 민간인 학살이란 진실이 왜곡됐기 때문이다. 대형 항공사들의 모습에서 보듯 그 낡은 기준은 아직도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할퀴고 있다.


제주도민들은 강요된 침묵 속에서 지난 수십년간 4·3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2000년 1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제주지역 기자들은 역사의 비극을 기록하고 또 기록하며 이 아픔을 보듬어 왔다. 4·3을 오랜 시간 취재해온 좌동철 제주신보 기자, 권혁태 제주MBC 기자를 만나 ‘4·3과 제주 언론’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8년차 기자가 돼서야 마주한 4·3
역사의 비극 되풀이 막으려 공부 나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좌동철 제주신보 기자에게도 4·3은 침묵 속에 가려진 사건이었다.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제주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4·3’이란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4·3을 처음 접한 건 지역신문 8년차 기자이던 2007년. 그해 제주국제공항에서 진행된 희생자 유해 발굴 작업을 취재하면서다. 제주공항(옛 정뜨르비행장)은 1949년 사형수 249명과 1950년 예비검속자 500여명이 집단 처형된 곳으로 알려졌다. 2년간의 작업으로 380여구가 발굴됐고 90여구의 신원이 확인됐다. 유해 대부분은 두 손이 묶인 상태에서 서로 포개진 모습이었다. 집단 총살 뒤 매장됐다는 증거다. 이달 들어 제주공항 유해발굴이 9년 만에 재개됐다.


좌 기자는 “참상을 직접 마주하고선 너무 놀랐다.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4·3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그때 이후로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을 만나 관련 기사를 많이 썼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는 기획 시리즈 <4·3의 기억, 현장을 가다>를 연재했다.


제주가 고향이 아닌 권혁태 제주MBC 기자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면서 일찌감치 4·3에 관심을 뒀다. 은사인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위원을 맡아 제자들과 함께 제주답사를 다녔다고 한다. 권 기자는 대학시절 인권모임 간부를 맡아 4·3기행을 기획해 제주를 오갔고, 4·3연구소가 주최하는 세미나·공청회 일을 도왔을 만큼 4·3과 인연이 깊다.


그는 “기자가 되면 4·3을 취재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2005년 제주MBC에 합격했다”며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특히 2014년, 4·3 당시 불렸던 노래들을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담아낸 <산 들 바다의 노래>의 반향이 컸다”고 했다. 이 작품은 그해 한국방송대상에서 지역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을 받았다.


제주 4‧3을 오랜 시간 취재해온 좌동철 제주신보 기자(왼쪽)와 권혁태 제주MBC 기자. (김달아 기자)

▲제주 4‧3을 오랜 시간 취재해온 좌동철 제주신보 기자(왼쪽)와 권혁태 제주MBC 기자. (김달아 기자)


4·3 취재 기자들도 트라우마 겪어
권 기자는 4·3 취재에 나설 때마다 먼저 취재원과 신뢰를 쌓는다. 생존자와 유가족들이 처음 본 그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권 기자가 제주 사투리를 쓰지 않는 ‘육지것’(육지 사람)이어서다. 그럴 때면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생존자, 유가족들을 만나러 간다. 권 기자는 “수개월에 걸쳐 친분을 쌓으면서 저의 진정성을 말씀드린다”며 “그때서야 마음을 터 넣고 이야기해주신다”고 말했다.


좌 기자도 유족들이 기자인 자신을 믿고 먼저 연락해와 증언을 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올해 70주년 기획에 실린 ‘정방폭포 학살터’ 기사가 그랬다. 당시 두세 살배기 아이를 업고 있던 부부가 폭포 위에서 총살 당해 가족이 함께 바다에 수장됐다는 비극적 사연들이다.


두 기자는 지난 10년 동안 4·3을 취재하며 수많은 관계자와 사연을 접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에 눈물짓고 극악무도한 민간인 학살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권 기자는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4·3을 다뤄온 제주지역 기자들에게도 트라우마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장 잊히지 않는 사연으로 종달리마을 희생자를 언급했다. 권 기자는 “경찰서에 잡혀 있다 ‘아이만은 살려 달라’는 부모님의 요청에 혼자 죽음을 면한 당시 소년의 증언”이라며 “10분 뒤 콩 볶듯이 총소리가 났다고 한다. 곧 경찰이 와서 ‘아버지 어머니 죽으니까 억울하냐’고 물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당시 말로 ‘억울하지 아니합니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왈칵했다”고 전했다.


30년 후 ‘4·3 100주년’ 기억하는 사람 있을까
“제주지역 기자들 역할 중요해”

올해 4·3은 그 어느 때보다 여운이 깊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권력이 가한 폭력에 사과하고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현직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이다.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달라진 보도 양상도 눈에 띈다. 제주지역 언론뿐 아니라 중앙언론도 예년과 달리 4·3을 앞 다퉈 보도했다.


특히 권 기자는 4·3을 비중 있게 다룬 MBC 뉴스가 전국으로 방송되는 걸 보며 변화를 실감했다. 그는 “예전에는 전국 방송에 4·3 단신 하나 내기도 어려웠다. 우리가 제작한 4·3특집 다큐멘터리의 원고 속 단어, 역사적 맥락상 중요한 적기가 삽입을 문제 삼아 예정돼 있던 전국 편성을 취소한 적도 있었다”며 “이번 리포트는 지역과 서울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MBC가 달라졌다는 걸 분명하게 느낀다”고 말했다.


좌 기자는 올해를 “4·3 전국화의 시작점”이라고 평가했다. 현직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에 더해 그동안 제주도 안에서만 열렸던 4·3 행사가 서울 등 지역 곳곳에서 개최됐다. 4·3을 상징하는 동백꽃 배지 달기 캠페인도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사건 발생 7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전국민의 관심을 받게 된 셈이다.


두 기자는 이럴 때일수록 지역 언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히 ‘민간인 학살’을 넘어 1948년 제주에서 봉기가 왜 일어났는지, 희생자는 누구이며 책임자는 또 누구인지, 명백한 진상규명이 이뤄지는지 끊임없이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좌 기자는 “1945년 광복 이후 대기근, 가뭄, 콜레라, 인구급증에 따른 일자리 부족, 물가 폭등, 관료 비리 등으로 제주도민들의 삶은 팍팍했다”며 “이후 4·3의 도화선인 1947년 3·1절 기념 대회 발포사건, 제주도민 총파업부터 역사적 맥락에서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좌 기자는 “제주언론이 오랫동안 보도해왔지만 아직도 밝혀야 할 진실이 많은 4·3은 다른 근대사보다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는 것 같다”며 “국민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전면으로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처럼 많은 이들이 4·3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권 기자는 4·3이 먼 과거가 아니라 분단, 통일, 평화, 인권의 문제까지 오늘날과 맞닿아 있다고 했다. 육지에서 내려온 이들이 말하는 것, 먹는 것, 입는 것이 다른 제주사람들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과정에서 ‘다름과 틀림을 구분 못 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이 드러난다고도 했다.


권 기자는 “4·3처럼 해방공간에서 서로 대립하며 생겨난 모순들이 아직도 제주지역 사회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며 “그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던 미군정, 그에 맞섰던 무장대로 취재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권 기자는 “‘4·3 보도물을 제사 지내듯이, 의무적으로 만들지 말라’던 선배들의 말을 늘 간직하고 산다”며 “올해가 70주년인데 100주년 때는 4·3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존자에게 직접 이야기들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0~15년이다. 이를 제대로 기록해야 하는 제주 기자들의 책무는 더 무거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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