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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 받아쓰기...'미투 보도' 이대로 괜찮나

고발자 신상, 고발 전문 기사화에 급급

최승영2018.02.28 16:03:28

‘미투운동’이 각계로 확산되면서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명 폭로를 이유로 ‘페북 전문’ 등을 자극적으로 옮기고, 피해자의 신상이 전시되는 행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일부 언론사에서 자성을 촉구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법조계 성폭력 폭로 후 사회 각계로 확산 중인 ‘미투운동’ 관련 언론보도 추세는 문화예술계 ‘이윤택 성폭력 의혹’만 봐도 확인된다. 우선 양이 압도적이다. 27일 오후 기준 포털 네이버에서 ‘이윤택’과 그간 4인 고발자의 이름을 함께 검색하면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1334건, ‘김보리(가명)’ 239건, ‘이승비’ 배우 476건, ‘김지현’ 배우 584건 등의 관련 기사가 나온다. 문화예술계 최초 폭로 후 약 보름 동안, 고발자 각각의 실명으로 검색된 결과가 이 정도다.



이 같은 보도 가운데 우려를 자아내는 기사 역시 잇따르고 있다. 고발자의 폭로문 전문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네이버에서 ‘조민기 성폭력 의혹’과 관련해 폭로 당일(21일) 최초 고발자 ‘송하늘’ 배우가 거론된 보도는 489건에 달했다. 그 중 ‘페북 전문’을 캡처하거나 가공 없이 그대로 기사화 한 보도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109건에 달한다.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최초 폭로가 이뤄지고 언론이 이를 받아쓰는 ‘미투’ 보도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소지가 크다.


‘미투운동’의 특성상 이 같은 보도가 보도윤리에 어긋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은 ‘2차 피해 방지’를 우선해 만들어졌지만 ‘미투’는 고발자가 자신의 신원을 직접 공개하는 피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적극 목소리를 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다르다. 이 지점에선 견해가 충돌할 수 있다. 다만 성폭력 보도라는 범주 안에서 이런 보도들이 ‘피해자의 신원노출 주의’, ‘피해상태 상세 묘사 자제’ 같은 원칙을 위험하게 넘나들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특히 실명 폭로가 곧장 기사화에 대한 동의는 아니고, 전문 공개는 구체적인 가해 행위를 보도 형태로 적시한다는 점에서 언론은 무결하지 않다. 앞선 ‘조민기 사태’ 관련 보도에서 고발자 동의하에 전문을 실었다고 밝힌 언론은 경향신문이 유일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피해자가 신상을 공개하고 폭로했으니 그냥 보도해도 무방하다는 건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닌가. 피곤할 수 있지만 언론이라면 추가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게 원칙이라 본다”며 “기사화를 할 때 사용가능한 수위를 그분들에게 연락해 소통할 순 없는 건가”라고 말했다.



상당수 언론은 고발자의 신상과 사진을 게재하며 문제적 성폭력 보도의 구태를 반복하기도 했다.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력을 폭로한 ‘이승비’ 배우를 두고 국제신문, 매일경제, 부산일보, MBN, 전자신문, 한국경제, 한국일보, 헤럴드경제 등 수십 곳 언론은 프로필·개인 페이스북 사진을 첨부해 신상을 뉴스화했다. 타 방송에서 이뤄진 고발자의 인터뷰 영상 중 일부를 캡처해 이 같은 프로필 기사에 굳이 더하는 모습도 보였다. 브릿지경제 등 3개 매체는 인스타그램에서 갈무리한 사진으로 몸매를 부각했다. 쿠키뉴스는 ‘송하늘’ 배우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기사에 넣기도 했다.


현 ‘미투운동’ 보도가 잘못된 정보를 제공해 피해자 보호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진희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 피해자국선전담변호사는 “언론에선 공소시효 기한만 묻는다. 성폭력 범죄는 복잡하고 전담이 아니면 변호사, 판사도 잘 모른다. 사건별로 다 다르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정보가 제공되는 데 조심스럽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 분위기가 가라앉고 피해자들을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투운동’ 보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서도 우려가 묻어난다. 27일 언론재단 ‘미디어이슈’ ‘성폭력 피해 폭로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 인식’에서 온라인 응답자 1044명 중 75.3%가 언론이 ‘피해자 인격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 65.4%는 충분히 보도되고 있다고 봤지만 48.9%는 선정적 내용(피해사실 세부묘사)이 많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 언론에서 현 ‘미투’ 보도에 대해 자성의 움직임이 보이는 건 고무적이다. 경향신문은 지난 22일 편집국장이 기사 데스크 공지로 이에 대한 방침을 밝혔다. 이기수 편집국장은 “지금은 막 올려 놓는다고 쓸 수 있는 미투 기사가 아니다”라며 실명 보도·보도 취지를 넘어선 표현의 신중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견이 갈리는 ‘페북 전문’ 공개에 대해선 더 많은 토론과 의견을 듣겠다고 부연했다.


경향신문 한 기자는 “우리도 조회 수 장사를 안 했다고 보긴 어렵다. 젊은 기자들이 고민되니까 독실위를 통해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전했고 답을 한 것”이라며 “기자들끼리 의견이 다른 지점도 있다. 계속 토론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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