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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 vs 국가 안보’ 핀란드 언론계 시끌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교육 석사과정

최원석2018.01.03 14:20:48

2017년 연말, 핀란드 언론계는 ‘언론 자유의 범위’를 놓고 시끄러웠다. 국가보안시설 기밀 정보를 보도한 종합일간지를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경찰이 기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핀란드 언론인들은 ‘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며 충격받았다.


국경 없는 기자회(RSF)에서 이 일을 두고 우려스럽다는 성명을 냈는데, 핀란드 대표는 ‘RSF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자리를 내놨다. 러시아 미디어에서도 이를 며칠 동안 관심 있게 다뤘다. 유출된 국가 기밀시설의 핵심 활동이 대러시아 정보수집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논쟁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는 헬싱긴 사노맛(Helsingin Sanomat)이다. 한국으로 치면 조·중·동급의 종합일간지로, 핀란드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언론사 가운데 하나다. 헬싱긴 사노맛은 12월16일 ‘핀란드의 비밀 공간’이란 제목을 달아 특종 기사를 내놓았다.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정부 보안 시설의 정체가 ‘정보 수집 센터’였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들이 입수한 기밀 문건 내용의 일부를 기사로 실었다. 문건 자체는 10년 전쯤 작성된 것이었지만, 비밀리에 운영 중인 방위사령부 정보연구소의 임무가 담겨 있어 파문이 일었다. 헬싱긴 사노맛은 특히 시설이 국경 인근 러시아군의 동태와 함께 전자기파 기록까지 수집한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기사에 담았다. 토요일판에 크게 실어 보낸 기사에 정부가 곧장 반응했다.


방위사령부(Defence commander)는 문건 유출 경위를 수사 의뢰했다. 핀란드 국립수사국(National Bureau of Investigation)은 신문사 수사에 착수했다. 같은 날 사울리 니이니스뙤(Sauli Niinistö) 핀란드 대통령은 공식 성명을 냈다. “기밀 문서가 헬싱긴 사노맛에 불법적으로 전달됐습니다. 수사가 필요합니다. 극비 문서 내용 공개는 우리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헬싱긴 사노맛 편집국장 까이우스 니에미(Kaius Niemi)는 독자에게 공개편지를 실었다.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권력의 활동을 감시하고 바로잡는 일입니다. 우리에겐 독자들에게 이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해당 기사를 취재한 기자들이 ‘취재원 보호’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 기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인 라우라 할미넨(Laura Halminen)이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망치로 때려 부수다 불이 붙었다. 기자는 소방서에 신고했고, 일반적인 절차에 따라 경찰이 따라왔다. 현장에서 신고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한 경찰은 기자가 해당 기사 관련 증거를 없애려 한 사실을 눈치채고 상부에 보고했다. 추가 파견된 형사들이 압수수색을 바로 진행해 4시간 동안 라우라 기자의 휴대전화와 하드디스크, USB 메모리 스틱 여러 개를 압수했다.


헬싱긴 사노맛은 후속 보도를 이어갔다. 핀란드 정부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정보법 개정안’이 핀란드 내 외국인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자국민 정보 수집까지 가능하도록 만들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무엇보다 러시아군 관련 정보를 지속해서 감시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스푸트니크뉴스를 포함한 러시아 언론에서도 이번 사안에 큰 관심을 두고 보도했다.


한국 언론계에서 기자가 이처럼 취재 활동을 하다 수사까지 받았던 사례를 찾아봤다. 1968년 동양통신사가 국회 공개회의에서의 국방부장관과 국방위원장 발언을 보도한 뒤, 검찰이 편집부장과 사회부 차장, 기자를 기소한 일이 있었다. 국회 문건을 유출한 공무원은 처벌을 받았지만, 언론인 셋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언론자유와 군사기밀의 한계를 살핀 최초의 법원 판례였다. 가장 최근에는 KBS 정치부 기자가 국회 본청 205호 민주당 당 대표실을 도청한 사건으로 압수수색을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의 도청은 정권을 위한 것이었지, 시민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언론 자유는 어느 선까지 확장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그러질 수 있는 언론 윤리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이 우리에게도 있다.


핀란드 언론계의 이번 사안을 보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건, 북한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의 자유와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기자가 국정원의 대북 정보수집 관련 기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해당 기자를 경찰이 우연히 방문해 압수 수색하고 국방부가 언론사를 수사 의뢰한다면? 사실 지금도 국정원이나 국방부에서 진행 중인 북한 관련 업무를 언론이 투명하게 알긴 어렵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알아야 하는 정보를 입수했을 때, 한국 언론사는 어떤 기준에서 ‘국가 안보’와 ‘언론 자유’를 판가름할 것인지, 그 기준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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