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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기자들, 기자상 시상식에서 “퇴진 고대영” 팻말 들다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부대 운용
국장단 거부로 보도 못하게되자
‘파업뉴스팀’ 만들어 유튜브 특종

최승영 기자2017.10.11 15:01:01

상을 받는 건 좋은 일이다. ‘보통’은 그렇다. “영광이고 기쁜 일이죠.” 지난달 28일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KBS 기자들의 공통된 소감도 이렇게 시작한다. 대부분 수상소감은 이 뻔한 문장 하나로 갈음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KBS ‘파업뉴스팀’ 기자들은 마냥 좋아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착잡합니다. 진한 회의감도 들고, 아쉽고 안타깝죠.” 이런 말이 덧붙는다. 수상자 중 하나인 KBS ‘파업뉴스팀’ 이재석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KBS가 오죽 전락했으면 ‘파업뉴스’를 통해서 특종보도를 해야 하나 싶은 거죠. (저희가 보도하기 전인) 8월 말엔 관련 보도가 전혀 없었어요. 앞장 서서 우리가 몇 개월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건데…. 문을 열어 스타트를 끊고선 속보를 못하고 손 놓고 있는 게 착잡하죠.”


▲KBS ‘파업뉴스팀’ 기자들이 지난달 28일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고 기념촬영 포즈를 취한 모습.

‘보통’이었다면 KBS 뉴스로 나갔어야 할 사안이 보도국장단의 거부로 전파를 타지 못했다. 그렇게 거절된 리포트를 파업참여 기자들이 ‘유튜브’로 선보이자 덜컥 상을 받았다. 수상작 <댓글공작 최초 실명 폭로…“청와대 날마다 보고”> 리포트는 군 사이버사령부의 불법 ‘댓글부대’ 운용을 최초 실명 폭로했고, 이를 둘러싼 청와대-국정원-군 사이버사의 구도를 상당 부분 입증해 파장도 컸던 보도다. 그 외 ‘민주당 도청 의혹’, ‘KBS이사 비리’ 등 굵직한 사안을 9편에 걸쳐 제작한 게 ‘파업뉴스팀’ 그간의 행보다. KBS 보도국을 벗어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서야 KBS 기자들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


이재석 기자는 2012년 ‘민간인 사찰’, 2014년 ‘문창극 후보 검증’ 등 사례를 거론하며, “힘의 공백 상태 때마다, 부당한 데스킹이 없을 때마다 특종보도가 나왔다는 건데 그걸 보면 지난 9년 간 리더십이 얼마나 부당하게 작동했는지 방증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루 빨리 파업에 승리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수상은 보도 외적으로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상(賞)은 결과물에 대한 계측이든, 시간과 태도에 대한 인정이든, 과거에 대한 평가가 되기 마련이지만 ‘파업뉴스팀’의 활약은 정상화된, ‘보통’의 KBS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미래의 ‘예고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파업뉴스팀’팀장을 맡고 있는 엄경철 앵커는 “보도국장단 판단에는 절망을 느꼈지만 후배 기자들에게서 미래를 본 시간”이라고 말했다. 21기부터 42기까지, 선임급부터 막내 기자까지 20명 KBS 기자가 어우러져 만드는 ‘파업뉴스팀’ 맏형의 감회는 이렇다.


“아무런 공식 서포트 없이 자비와 시간을 들여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도 취재·촬영기자가 달라 붙는다. 새벽 3~4시까지 편집하고 쓰고 표정이 비장하기도 하고, 행복해하는 거 같기도 하고…. 좋은 기사를 쓰고 싶다는 열정이 폭발하는 느낌을 받는다. 얼마나 굶주렸나 싶다. 향후 후배 기자들에게 자율성만 열어주면 빠른 시간 내 일어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업뉴스팀’ 막내 김수인 기자 역시 “회사 CG를 못 쓰니까 외주를 맡기는데 ‘내가 해주겠다’ 그러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도 뭐라도 더 알아보려는 분위기”라며 “후배들 생각을 선배들한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있다. 선배들도 들어주려고 하니까”라고 전했다.


긴 연휴가 끝나고 다시 파업 국면. 지난달 28일 시상식에서 KBS 기자들은 소속 기자 모습을 담는 KBS 카메라 없이 타 언론 앞에서 기념촬영 포즈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KBS는 없고, KBS 기자들만 남았다. 단순히 시상식 참석 여하가 아닌 언론으로서 역할을 평가할 때 현 KBS의 현실이 그럴지 모른다. ‘파업뉴스팀’을 비롯한 KBS 기자들이 계속 싸워야 할 당위와 목표는 그래서 더 명확해진다.


‘파업뉴스팀’ 조태흠 기자는 “파업을 하지 않는 분들도 술자리 등에서 가끔 본다. 돌아가면 다시 얼굴 보고 일해야 하는 분들이다. 어떤 게 KBS를 위한 길인지 경영진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나은 상태에서 KBS 저널리즘을 세우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했다. “마지막 파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만 지나면 다들 일터로 돌아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을 테니 조금만 더 참고 견뎠으면 한다”고 그는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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