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은 두 동강일까…'양비론' 띄우는 언론

"태극기-촛불 모두 틀렸다"
대리인단 막말 무비판 보도
"탄핵 기각여론 조장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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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이라는 탈을 쓴 가짜 언론이라고 손가락질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박근혜 탄핵 기각을 선동하는 세력의 도 넘은 일탈에 KBS뉴스9는 입을 다물거나 ‘공방’ 틀에 집어넣고 속 보이는 물타기를 하고 있다.”(언론노조 KBS본부 성명 中)


KBS가 탄핵 이슈에 대해 ‘기계적 중립’ 입장을 취하며 정부 비판 보도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본부는 지난 6일 대선방송감시단 보고서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도를 넘는 행위에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뉴스9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다. 지난달 22일 김평우 변호사가 ‘재판관은 국회 측 수석대리인’ ‘내란 일어날 것’등의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KBS 뉴스9이 이를 공방 형식으로만 보도한 것이다.


▲KBS는 지난달 22일 뉴스9에서 대통령 측 대리인단의 막말 논란을 단순 공방으로 보도하며 노조의 반발을 샀다.

KBS는 재판관을 향한 협박 소식에도 침묵했다. 지난 25일 친박 집회에서는 “탄핵 인용되면 아스팔트 피가 뿌려질 것” “(재판관들의) 안위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등의 원색적인 발언이 쏟아졌는데, 뉴스9이 이를 보도하지 않으며 논란이 됐다. 


주요 일간지의 기계적 균형 보도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모두 “양쪽 다 틀렸다”는 양비론(兩非論)의 입장으로 탄핵 이슈를 교묘하게 빗겨나갔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 2일 동아일보는 ‘낮엔 태극기, 밤엔 촛불’이라는 제목으로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양분해 1면 사진으로 보도했다. 3면에서도 지면을 반으로 갈라 촛불과 태극기집회의 모습을 비교해 보여줬다. 조선일보도 ‘낮엔 탄반, 밤엔 찬반’으로 상황을 설명하며 광화문 광장의 모습을 1면에 담았다. 조선은 ‘3.1 만세 그 자리에...전국서 몰려든 태극기, 빗속에 켜진 촛불’로 헤드라인을 단 기사를 양 진영의 사진과 함께 3면에 실었다.


이날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일견 3·1절은 둘로 쪼개진 것처럼 비친다. 하지만 현 시국을 촛불과 태극기 대결 구도로 몰아가는 건 올바른 평가가 아니다”며 “헌법을 유린한 피의자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탄핵 반대 집회를 이와 같은 반열에 놓을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종구 한겨레 논설위원도 칼럼을 통해 “양진영의 갈등으로 나라가 두 쪽 날 지경이 됐다고 개탄하는 양비론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립적 보도가 단순히 양쪽 입장을 공정하게 대변해주는 데만 그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물타기’나 ‘여론 왜곡용’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달 2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헌재의 탄핵 결정 방향과 관련해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입장은 78.3%, 반대하는 이들은 15.9%인 것으로 조사됐다. 탄핵 인용 여론이 여전히 압도적인 상황에서 언론이 양비론을 내세우면 시민들은 현 시국을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 상태, 즉 팩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1일 태극기 집회를 두드러지게 다루며 ‘탄핵 반대 선전 매체’라는 비판을 받았다.

MBC는 양비론을 넘어서 ‘탄핵반대 선전 매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일 뉴스데스크가 <유례없는 3·1절 집회…태극기 물결> <탄핵심판 앞두고…“최대 인원 참가”> <태극기 들고 청와대로…대통령 응원> <젊은층·교포도 참가…“거짓 밝혀야”> 등 태극기 집회 소식을 눈에 띌 만큼 비중 있게 다루며 촉발됐다. 이날 태극기집회는 처음으로 촛불집회보다 앞서 보도됐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촛불 집회 리포트는 뒤로 밀리고, 양도 적었을 뿐더러 참가자의 인터뷰도 2개밖에 나가지 않았다. 반면 탄핵 반대집회 참가자의 인터뷰는 그 4배가 넘는 9개였다. 집회 참가자들의 발언 대다수가 탄핵 찬성 여론을 ‘종북’으로 모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안수찬 한겨레21 편집장은 “진실을 규명하지 않고 균형성과 공정성만 내세우는 게 바로 기계적 보도”라며 “진실을 가리게 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안 편집장은 “탄핵 관련한 여론은 설문조사와 그간의 국면의 흐름만 봐도 파악할 수 있는데도, 기계적 중립 보도를 하는 건 진실을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언론은 가장 중요한 임무인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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