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와 시기심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한국 언론은 왜 미일 관계를 질투하는가. 한국은 왜 일본과 공동보조를 맞추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가. 지난달 22일 일본 언론사의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일본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황망한 질문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머리속에서 질문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필자가 출연한 방송은 후지 텔레비전이 운영하는 위성방송 BS 프라임 뉴스라는 프로그램이다. 2009년 4월부터 시작한 토론전문 뉴스 프로그램으로 평일 저녁 8~10시 방송하는 시사 뉴스 프로그램이다. 특정 테마를 2시간에 걸쳐서 다룬다는 점에서 위성방송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후지 산케이 미디어 그룹이 운영하는 위성방송 채널인 관계도 있겠지만 보수적인 시각을 많이 반영하고 이런 점 때문에 일본 보수층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그날의 테마는 ‘한중일 언론인 설전, 김정남 살해와 북한’이었다. 일본측에서는 산케이신문 워싱턴 주재 객원 특파원, 중국은 환구시보의 특약기자, 그리고 한국측에서는 필자가 출연했다. 출연 전날에 김정남 암살 사건이 발생한 관계로 김정남 암살 소식이 급하게 첫번째 테마로 추가됐다.


문제의 질문은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미일 정상회담에 대한 각 국의 반응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나왔다. 패널은 미일 정상회담을 다룬 2월11일자 JTBC 워싱턴 특파원의 리포트 내용과 16일자 조선일보 사설 일부를 소개했다.


“위안부, 북한 문제 등 핵심 현안을 일본에 선점 당할 수 있는 리스크를 동시에 떠안게 됐습니다.(JTBC)” “한국에 있어서는 심각한 위기이자 도전이다. 아베 총리의 생각이 그대로 트럼프 정권의 동아시아 정책이 될 수 있다.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의 하위개념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있다.(조선일보)” 이 방송이 인용한 대목은 조선일보 사설이 아니라 논설위원이 쓴 칼럼이었다.


‘선점 당한다’는 표현과 ‘하위개념’이라는 단어는 빨간색으로 강조되어 있었다. 사회자는 한국은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 선점 당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가, 한국과 일본은 동맹관계를 둘러싸고 미국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경쟁을 벌이는 관계인가라고 질문했다. 사회자의 질문 의도는 미일 동맹이라는 일본외교의 큰 잔치를 한국이 응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잿밥을 뿌리려는 것은 아닌가로 보였다. 미일 정상회담은 미국과 일본의 잔치인데 굳이 한국을 거론할 필요가 있는가. 아베 총리가 자신의 외교성과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데 한국을 포함시키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굳이 일본을 거론하면서 성과를 나누느냐는 것이다.


사회자 질문 의도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 언론의 시각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은 깨달았다. 첫번째는 위안부, 역사문제, 영토문제 등 양국간에 대립되는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일본의 잔치까지 삐딱하게 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의 국익과 관련된 문제가 사전 논의 없이 미일 정상회담에서 거론된다면 특파원들은 당연히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외에 한국과 관련한 문제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미사일 발사 이후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을 주도하게 하는 서비스도 제공하면서 일본의 환심을 샀다.


두번째는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일본과 경쟁하고 우열을 가리려는 시점은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미일 동맹을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한미 동맹을 맺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안보에 필요하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거액의 방위분담금을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빅터차 조지워싱턴 대학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일은 유사동맹관계로 맺어져 있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 정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안보의 중요한 파트너인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는 미국의 중재가 아니라 한국의 노력으로 만들어야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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