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자 한국일보 편집위원
따옴표의 남용과 악용이 언론계 안팎에서 논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우리 언론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오늘의 우리신문처럼 수 많은 따옴표를 남발하며 인용문을 거르지 않고 써내려 간 신문이 있었을까. 지난해 11월 22일 ‘따옴표를 읽으십시오’라는 글을 한국일보에 쓴 적이 있는 나는 신문의 따옴표 난무를 비판한 최근의 기자협회보 사설(4월 10일자), 이대 이재경 교수의 글(중앙일보 4월 9일자), 한겨레 정연주 주간의 글(한겨레 4월 19일자)을 보면서 이제는 다수가 인용의 남용과 악용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함을 확인하고 그 개선이 당겨질 날을 기다린다.
인용부호라고도 불리는 따옴표는 글에서 대화, 인용, 특별어구를 드러낼 때 사용하는 부호이다. 구어에서라면 휴지나 어조변화, 강세첨가로 실현된다. 소설도, 논문도, 기사도 따옴표가 쓰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누구나 글을 쓰다 보면 적어도 인용, 강조하고 싶은 어구는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위주의 소설과 타인의 작품구절 인용이 필수적인 비평적 분석을 제외하고 인용이 많은 글은 결코 좋은 글이 아니다. 논문 잘 쓰는 방법에서의 움베르토 에코식으로 말하면 글에서의 많은 인용은 글쓴이가 자료를 요약하거나 환언할 능력이 없거나, 그 수고를 덜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인용은 글쓴이의 게으름 표시이고 임무방기 행위이다. 많은 인용은 마구 수집한 증언의 나열처럼 논점, 논지를 흐리게 한다.
우리신문에서 인용이 부쩍 늘어난 것은 현 정부 출범 이후이다. 신문에 인용이 남용되어 좋지 않은 이유는 에코의 설명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신문들은 인용을 악용한다는 혐의를 갖게 한다. 정부와 야당의 대립,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 후보의 대결에서 야당과 이인제 후보의 말을 더 많은 기사에서, 기사제목에서까지 인용한 것이 증거이다.
일부 신문이 제목에서 특정당, 특정인의 말을 인용하는 사례는 그대로 넘길 일이 아니다. 다들 아는 바처럼 제목위주로 신문을 보는 제목독자(headline readers)가 늘었다. 제목의 영향력은 기사내용을 개관하게 하고 기사중요도를 보이고 독자주의를 끄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독자는 기사를 읽은 후 기사 내용에 관한 기억을 제목에 따라 수정까지 한다. 그러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제목이야말로 불편부당해야 하므로 인용의 악용은 멈춰야한다.
제목에 부득이 인용을 할 경우 인용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원칙은 셋이다. 첫째 따옴표 앞이나 뒤에 비판적 표현을 넣는 것, 둘째 설명을 하는 것, 셋째 누가 인용내용을 말한 것인가, 주장한 것인가, 단언한 것인가, 가정한 것인가를 알 수 있게 주어와 서술어를 밝히는 것이다. 기사제목에서는 자수의 제약상 셋째 원칙을 지키는 일이 가능한데 서술어를 밝혀야 하는 이유는 이 서술어들이 비사실성 동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서술어는 생략하는 일이 잦고 주어는 제목활자보다 훨씬 작은 부제목에서 표시한다. 흉내로 주어와 서술어를 내세운다 할 것이다.
인용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용내용은 글쓴이가 참(truth)이라고 보장하지 않는 내용이다. 그래서 인용원칙이 필요하다. 에코의 말처럼 원칙을 지키지 않은 인용은 따옴표 뒤에 숨어서 인용내용에 동의하며 그 내용을 주장하는 것이다.
일부 신문이 조폭언론이라는 험악한 딱지를 갖게 된 배경에는 인용의 악용도 한 자리 한다. 겹따옴표, 홑따옴표로 어지러운 제목들을 보면 한 국어학자의 제안이 생각난다. 교열기자협회가 표기법 표준안을 연구하여 채택하는 것처럼 편집기자협회가 제목표현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제목쓰기에 관한 표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다시보기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