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이기주의와 위선의 끝을 보다

[그 기자의 '좋아요'] 정희윤 남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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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윤 남도일보 기자

[단편소설] 기 드 모파상 ‘비계 덩어리’


세계 3대 단편작가로 꼽히는 프랑스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데뷔작 ‘비계 덩어리(Boule de Suif)’는 인간의 추악한 이기주의를 그린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1870년에 발발한 ‘보불전쟁’ 상황을 극적 요소로 삼은 이 작품은 가진 자들이 약자를 어떻게 짓밟고 이용하는지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프로이센군에 점령된 루앙에서 디에프로 가는 역마차에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10명의 인물들이 한 마차에 합승한다. 백작, 의원, 돈 많은 상인과 그들의 정숙한 아내들, 수녀, 민주주의 운동가와 창녀까지…. 전쟁의 광풍을 피해 마차에 함께 탄 이들은 보이지 않은 계급을 형성하며 겉으로는 도덕적이고 품위를 지키며 애국심에 불타는 척 위선을 떨지만 속내는 ‘나만 살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뿐이다.


제목인 ‘비계 덩어리’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창녀 엘리자베스 루셰(Elisabeth Rousset)를 일컫는다. 루셰는 창녀라는 미천한 직업과 뚱뚱한 몸매 때문에 고상한 귀부인들에게 암묵적 견제와 멸시를 한 몸에 받는다. 하지만 루셰는 혹한의 피난길에 일행들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하게 된다. 마차 안에서 굶주림에 매가리가 풀려버린 사람들에게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 허기를 이길 수 있게 했으며, 길을 막아선 프로이센군 장교에게 몸을 내주고 통행 허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비계 덩어리’라고 부르며 비하하고 천대하면서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그녀를 성노리개로 내모는 지도층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새롭다.


피난 마차에 탄 10명의 일행 중 루셰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로 모범을 보여야 할 고고한 군상들이 보여준 것은 추악한 이기심, 아니 일말의 양심도 찾아 볼 수 없는 파렴치의 극치였다.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새삼 ‘비계 덩어리’를 읽었을 때의 구토감을 느낀다. 인간의 이기심과 파렴치함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인간의 본성이 이렇게 추악한 것인가 하는 자괴감도 든다. 21세기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논하는 현실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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