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직후 작성된 이 보고서를 훑어보는 내내 등짝이 따끔거렸습니다. “좋은 보도에 써달라”는 유족의 당부를 받고, 일단 가방에 담아 나왔지만, 보고서의 실체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였던 남궁욱 캡의 도움을 받아 보고서 작성 당시 민정라인 핵심 관계자, 현직 청와대 관계자 등에게 보고서를 거듭 확인했습니다. 확인 결과 작성 주체는 국정원, 독자는 대통령.
권력 기관의 보고서답게 내용은 알찼습니다. ‘여객선 사고’ 관련 내용뿐만 아니라 진보성향 교육감 대응 방안, 교황 방한 활용 계획, 언론·시민사회단체 통제 전략 등이 빈틈없이 담겨 있었습니다.
신진, 박현주, 최규진 기자와 내용을 검토하며 느낀 ‘자괴감’을 다 담아내기에 이틀간의 보도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보도 후 전문을 스캔해 JTBC 페이스북 계정에 공개했습니다. 실종자 12명에 대한 수색이 한창이었던 그때, 국정원과 청와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이 보고서 내용을 접하고 고민하는 게 취재진만의 몫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보도 이후 만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그동안 우리가 당한 일들이 여기 고스란히 적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이병호 국정원장은 “제가 취임한 이후에는 비슷한 보고서를 청와대에 보고한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 형편없는 취재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국회 청문회장에서 ‘사법부 사찰 문건’이 공개됐습니다. 글꼴이나 워터마크가 한 달 전 마주한 그것과 똑같아 보입니다. 또 등짝이 따끔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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