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경쟁으로 비리 파헤치고 출처 표기 인색 관행 변화

<최순실 게이트가 바꿔놓은 언론>
타 언론사 단독 인정하고
상호 협조로 실체에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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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난 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역대 최대 규모 촛불집회, 관련자 구속, 대통령의 1~3차 대국민 담화, 특별검사 출범 등 정국은 수차례 ‘분수령’을 넘었다. 오는 9일엔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있다.


언론의 끈질긴 보도가 게이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언론계의 긍정적 변화가 감지된다. 공조 취재 관행이 되살아났고 타사 인용보도에 인색했던 문화가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다. 언론의 역할이 주목받은 만큼 게이트 국면이 언론문화 개선에 분수령이 되길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게이트 국면에서) 바람직한 취재 관행이 부활했다”며 반겼다. 배 교수는 “민주화 이후 권력 비리가 터지면 언론들은 취재경쟁을 벌이면서도 공조하는 모습이었다”며 “이런 관행 덕분에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언론사들은 함께 새로운 사실에 접근하며 비리를 파헤쳤다”고 설명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이 출처 표기에 인색한 언론계 관행을 바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24일 JTBC가 최순실씨 태블릿PC를 입수해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등에 개입했다고 보도한 다음날 이를 인용한 조선일보(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중앙일보, 한겨레 기사 캡처.

배 교수는 그러나 “언론의 정파성이 짙어지면서 문화가 사라졌다. 언론이 정파적 관점에 따라 사안을 물타기 하거나 권력감시에 소홀하기도 했다”며 “이번 게이트 보도과정에선 하나의 사실이 드러나면 타사가 추가 취재해 또 다른 내용을 덧붙이는, 언론들의 협조로 실체에 한 발자국씩 접근하는 문화가 살아나 반가웠다”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용보도다. 그동안 언론사 대부분은 타사 보도를 받아쓸 때 출처 밝히기에 인색했다. 기자들이 인용보도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자존심 상해하는 경향과 맞물렸다. 처음 보도한 언론사를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아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 탓도 있다.


하지만 지난 10월24일 JTBC가 최순실씨의 태블릿PC를 입수해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 등에 개입했다’는 정황을 보도한 뒤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다음날 조간신문 지면엔 JTBC가 큼지막하게 쓰였다. JTBC는 잇따라 대형 단독을 터뜨렸고 게이트 보도를 주도했던 한겨레, TV조선 등도 타사 보도에 계속해서 등장했다. 그 뒤로 굵직한 보도를 한 언론사의 이름은 타사의 지면, 방송에 그대로 나타났다.


종합일간지에서 게이트 보도를 담당하는 기자는 “TV조선, 한겨레가 보도를 해오긴 했지만 그날 JTBC 뉴스를 계기로 온 언론사가 취재에 들어갔고 게이트로 발전한 만큼 충격이 컸다”며 “저녁 뉴스라 타사 기자들은 취재할 시간도 없었고 전 국민이 JTBC 보도인 걸 아는 상황에서 출처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외에 타사의 대형 보도를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힌 최근 사례는 또 있다. 2014년 세계일보의 ‘비선실세 정윤회 문건 유출’ 보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인용보도는 하루 이틀 만에 잦아들었고 모든 언론사가 동참하지도 않았다. 사회적 파장이 크긴 했지만 세계일보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


이 때문에 지금이 “출처 표기에 인색한 관행을 바꿀 적기”라는 말이 나온다. 인용보도에 적극적인 분위기인 데다 사안이 오래 지속되고 있어서다. 김보협 한겨레 디지털 에디터는 “진보-보수로 나뉜 탓에 충분히 받아쓸 수 있는 기사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원소스를 정확하게 밝히는 게 독자에게 친절한 것이다. 게이트 국면을 계기로 타사의 훌륭한 보도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바람직한 관행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이 지면뿐 아니라 온라인에도 반영되길 바라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병상 투혼 모습을 단독 포착한 이효균 더팩트 기자는 “아직도 온라인매체나 연예스포츠 뉴스에선 정확한 매체명 대신 ‘한 매체’가 주로 나온다”며 “힘들게 취재한 타사 기자와 그 기사의 가치보다 자사 트래픽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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