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들은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익명 보도를 한다. 이 과정에서 인터뷰 조작 논란 등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되기도 한다. (뉴시스)
익명 인터뷰 조작 의혹은 지난 6월 수면 위로 드러났다.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이 보도국 뉴스시스템 게시판에 ‘리포트에 삽입되는 익명 인터뷰에 대한 준칙을 마련하자’는 내용의 글을 올리면서부터다. 지난 4월과 5월에 방영된 <애플 수리고객 불만 폭주, 서비스업체 불공정 약관 탓>, <납품업체는 봉? 아직 못 고친 대형마트 ‘갑질’> 리포트에 담긴 음성변조 인터뷰가 동일인으로 보이는 등 조작 의혹이 있으니 사실 확인을 위해 자체 조사를 해달라는 요구였다.
지난달 11일 김 협회장은 보도전략부에서 NPS추진센터로 발령 난 지 8개월 만에 심의국으로 전보됐다. 노조에서는 ‘보복 인사’로 보고 반발하고 있다. “보도국장 등 여러 명의 보도국 간부들이 NPS(News Production System)에 입력된 해당 인터뷰들의 원본을 청취했으며, 해당 기자로부터도 관련 자료를 제시받아 취재원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임을 명확히 확인했다”는 MBC의 해명에도, 조작 의혹은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방송 기자들에게 익명 인터뷰는 매우 중요한 소스이다. 폭로성 발언을 하는 취재원을 익명으로 보호하며 정보를 캐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뢰받지 못한 인터뷰가 뉴스의 전체 질을 훼손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철저한 데스킹과 기자의 양심이 요구된다. 한 종합편성채널(종편)의 기자는 “이번 MBC의 사례처럼 한사람에게 여러 인터뷰를 시키는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인을 동원해 인터뷰를 꾸리는 경우는 종종 있다”며 “마감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인터뷰를 공들여 할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손쉬운 유혹에 넘어가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뷰는 특히 지인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맥을 동원해서 빠른 시간 안에 원하는 멘트를 받는 방법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한 지상파방송의 기자는 “방송리포트는 영상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인터뷰뿐만 아니라 스케치 기사에도 지인을 동원해 그림을 얻곤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지상파방송의 기자도 “지인을 활용한다고 해도 그 사례에 꼭 맞는 사람이라면 사실대로 인터뷰하는 거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다”면서도 “가급적이면 길거리에서 직접 섭외하는 습관을 기를 필요는 있다”고 했다.
한 보도전문채널의 기자는 “10명을 시도했다면 그 중에 2명 정도만 인터뷰에 응해줄 정도로 시민 인터뷰를 따기가 힘든 게 현실”이라며 “처음부터 지인을 동원해 원하는 멘트를 의도적으로 얻는 건 문제지만, 시민들에게 필요한 부분 즉 요점만 말해달라고 하는 건 방송 리포트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대개 기자들은 인터뷰이를 찾지 못할 경우 홍보팀에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 홍보실에서는 사안에 적합한 인물을 섭외해 기자에게 전달해주고, 기자는 여러 명의 사례자를 모아 기사를 작성한다. 해외 취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외국 홍보팀은 취지에 맞는 인물을 섭외해서 소개해준다. 한 경제방송사의 기자는 “홍보실에 미리 섭외를 요청해놓으면 취재가 수월하다”면서도 “너무 의지하면 그만큼 홍보실에서 원하는 입맛의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어렵더라도 발품을 팔아 직접 발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은 취재원 보호 차원에 한해 익명이나 전화인터뷰를 사용하고 가급적이면 실명보도 원칙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 지상파방송 기자는 “기본적으로 방송기사는 그림을 못 만들고 섭외가 안 되면 킬 당하는 건데 그걸 의도적으로 속여서 만들면 그게 뉴스냐”고 지적하며 “비정규직 촬영 인력이 늘어나면서 상호 감시와 견제 기능이 떨어져 이런 문제도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편 기자도 “최대한 익명 보도는 자제하되, 필요한 경우에는 여러 차례 팩트 확인을 거쳐 인터뷰이를 선정하는 등 기자로서의 양심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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