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욱 "운명처럼 다가온 정치에 응답할 것"

언론인 출신 초선 국회의원 연속 인터뷰 ④민경욱 새누리당 연수을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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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새누리당(인천 연수을) 국회의원 당선자는 고개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약속 시간을 훌쩍 넘긴 게 맘에 걸렸는지, 아니면 정치인의 습성이 몸에 익은 탓인지 모르겠다. KBS에서 워싱턴특파원, 뉴스9 앵커, 문화부장 등을 지내며 기자로만 23년을 살아왔다. 그런 그는 돌연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했고, 이제는 국회의원이 됐다. 지난 13일 국회 새누리당 원내공보부대표실에서 그를 만났다.


▲민경욱 새누리당 당선자는 지난 13일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정치는 운명처럼 다가왔고 거기에 충실하게 응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 운동 기간 춤도 추고 창도 했다고 들었다.

“원래 유쾌하고 상쾌한 사람이다. 그런데 TV에 나온 이미지 탓인지 ‘딱딱하다’ ‘경직돼 있다’ ‘거만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창이나 아리랑을 부르고 마술을 하면서 친숙하게 다가가려고 애썼다.”


-유권자들이 민경욱 후보를 선택한 이유는.

“1월3일부터 4월12일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출근인사를 했다. 겨울 강풍 속에서 홀로 서서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진정성을 믿어주지 않았나 싶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는 점, 방송을 통해 얼굴이 알려진 덕도 많이 봤다.”


-당선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

“경선은 늦게 뛰어들었고, 상대가 현역 의원이었기 때문에 심적인 부담감이 컸다. 본선 때는 낙승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도권에 불어닥친 바람으로 신승을 했다.”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의 오만에 회초리를 든 것이다. 매를 일찍 맞는 것은 후일을 위해 좋은 것이고, 매를 든 이유에 대해 통찰하면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동네 대변인’이란 타이틀을 걸고 선거운동을 했는데.

“기자와 앵커, 청와대 대변인의 경험을 살린 것이다. 지역구 목소리에 힘을 보태서 증폭해 드리고 중앙에서 일어난 일을 전달하는 대변인 역할을 자임한 거다.”


-정치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운명이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대변인직을 제안하면서 ‘애국심, 국가에 대한 부름’ 등의 단어를 꺼냈다. 뭉클했다. 행정학과에 들어간 데서 보듯 제 무의식에 공직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김 실장이 그걸 끄집어냈다. 청와대 대변인을 천년만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총선에 나가면 좋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유와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씀들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정치는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고 거기에 충실하게 응답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민경욱 새누리당 당선자가 공식 선거운동 기간인 지난달 7일 오후 연수구 옥련시장 사거리에서 열린 합동유세에서 춤을 추고 있다. 뉴시스


-청와대 대변인도, 총선에 나간 것도 운명이었다는 얘긴가.

“그렇다. 지난해 2월 김기춘 실장이 퇴임할 때 인사를 하러갔는데 ‘방송국에 계시는 분 모셔와 힘들게 해 미안하다. 이게 민 대변인의 운명이다’고 하더라. 공직에 입문한다 생각했는데 정치를 하게 됐으니 운명일 수도 있겠다.”


-대변인직 제안은 어떻게 받았나.

“김기춘 실장이 대변인직을 제안하면서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연락해왔다. 45분 동안 대화가 이어졌는데 저는 끝까지 안한다고 했다. 김 실장은 ‘왜 안 된다고만 하냐. 자기희생도 있어야지. 애국심 같은 것은 없는 것이냐’고 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나흘의 말미를 줬는데 정말 끝 모를 고민을 했다.”


-뭐가 그렇게 고민이 됐나.

“끝까지 기자로 남고 싶었다. 또 정치를 잘 모르고, 앵커를 한 제가 움직였을 때 KBS의 신뢰도가 무너질까 우려됐다. 후배들도 눈에 밟혔다. 고민하는 과정에 제 나이도 50이 넘었고, 집사람도 당신이 하는 결정에 따르겠다고 해서 받아들였다.”


-오전에 KBS 보도국 회의에 참석하고 오후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하면서 논란이 컸다.

“핑계로 들리겠지만 사정이 있었다. 그날(대변인 임명장을 받은 날) 오후 4시까지 청와대로 들어가기로 돼 있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점심을 사면서 대변인으로 가게 됐다는 얘기를 하고 오후 2시 편집회의에서 정식으로 국장단에게 신상발언하기로 맘을 먹었다. 그런데 정부부처 업무보고가 있으니 오후 1시30분까지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는 바람에 사달이 난거다. 그 전에 누구에게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최고 수준의 보안을 지켜달라는 약속을 너무 세게 지킨 것이다.”


-KBS 후배들은 “말문이 막혔고 부끄러웠고 참담했다”고 비판했다.

“저의 자리 이동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에 대한 비난은 후배 기자들의 기개로 받아들인다. 당연히 해야 될 일이다.”


-정치적 롤모델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는데.

“선거 운동 기간 풀기 힘든 난제와 부닥쳤다. 그때 나도 모르게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은 지킬수록 강해진다’는 말이 떠오르곤 했다.”


-대통령의 의사결정이 폐쇄적이고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소통 얘기가 나오면 할 말이 없다. 대변인을 했던 제가 당사자니까…. 소통 부재는 프레임이다. 청와대에 들어가서 보면 소통을 많이 하고 계신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소통하는 방식도 다를 것이다.”


-대통령께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고 진언한다면.

“노코멘트다. 청와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된 민경욱 전 KBS 문화부장이 2014년 2월5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후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언론사 입사시험만 20번 떨어졌다고 했는데 기자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연세대 영자신문 ‘연세애널즈’에서 활동하면서 기자를 동경했다. 하지만 계속 떨어지고 나이 제한에 걸려 시험도 못 치르게 됐는데 기적적으로 KBS에 붙었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하다보니 남들보다 한 3배쯤 열심히 한 것 같다.”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겠다.

“우리나라 나이로 29살이었다. 기자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허리를 꺾고 슬퍼했다. 가고 싶은 서울대에 진학하지 못한 탓인지 대학 4년 동안 서울대생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다. 행정고시도 안 보고, 기자가 되려고 했는데 계속 떨어지니 심한 열등감에 시달렸다. 63년생에게 기회를 준 KBS 입사시험 공고는 희망이었다. 그것도 운명이다.”


-KBS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KBS 안에는 휴화산이랄까. 부글부글 밑에서 끓는다. 그렇게 의견개진이 활발하고 긴장감이 돈다. 공영방송에 대한 지향점은 있지만 방법론을 두고 날선 비판들이 있다. 조직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KBS는 정부와 시청자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그러니 공정하게 갈 수밖에 없다. 비판받을 지점도 있지만 공영방송의 정도를 가고 있고,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


-초선 정치인의 각오는.

“초선의 패기로 국회 쇄신에 전력투구하겠다. 특권도 내려놓겠다. 여야 간, 계파 간, 국회와 청와대 간 소통에 노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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