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조직개편안, 내부 구성원 반발

"공영성 포기 선언" "밀실개편"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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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내놓은 조직개편안을 두고 보도본부 내에서 뉴스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보도본부 산하 부서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촬영기자들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보도본부 밖으로 밀려났다. 탐사보도팀과 데이터저널리즘팀 등 그동안 공영방송사 내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오던 부서 역시 성격이 전혀 다른 부서에 포함되면서 역할이 축소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개편안 전체를 두고 구성원들이 “수익과 사업을 전면에 내걸면서 공영성을 포기한 것”이란 평가를 내놓는 가운데 고대영 사장이 취임 당시부터 밝혀온 ‘효율성’과 ‘직무 중심’ 조직으로의 변화와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밀실개편안’, ‘의견수렴 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당초 27일 이사회 의결을 목표로 조직개편안을 밀어붙여온 KBS는 잠시 주춤한 상태다.


▲KBS 현재 조직도 (KBS홈페이지)


이번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보도본부 산하 보도영상국이 영상제작센터로 소속이 바뀐다. 이는 기존 보도본부 소속으로 취재기자들과 협업해 오던 촬영기자들의 적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보도본부 밖으로 밀려난다는 의미다. 촬영기자들이 저널리스트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기 하락으로 이어져 뉴스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KBS기자협회는 지난 20일 성명에서 “촬영기자들은 저널리스트다. 단순히 영상을 촬영하는 제작자가 아닌, 공정성과 객관성, 진실성을 추구하며 저널리즘을 수행하는 언론인이다. 방송뉴스가 영상과 기사로 이뤄지듯, 뉴스의 절반을 담당하는 저널리스트란 말이다. 뉴스 영상을 생산하는 이들을 카메라맨이라고 부르지 않고, 카메라 ‘기자’라고 부르는 이유”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태풍, 지진과 같은 대형 재난 현장에서, 물대포와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집회 시위현장에서, 연평도 포격 도발 같은 국가적 안보 위기 상황에서 말 그대로 몸을 던진다”며 “바로 기자, 저널리스트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촬영기자들 역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KBS 보도영상국 촬영기자들 역시 사내 게시판에 성명을 올려 “우리는 좋은 뉴스를 만들고자 하는 공의를 지닌 보도본부 내 기자들의 동반자이며 그들이 기획하고 쓴 기사에 걸맞은 보도영상을 촬영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불이 났든 지진이 났든 전쟁이 났든 우리는 현장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며 “그것은 보도본부라는 조직의 명칭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명감과 책임감, 소속감이 없다며 불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조직개편을 통해 보도본부 내 탐사보도팀과 데이터저널리즘팀 역시 역할이 축소되거나 위축될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이들은 모두 이번에 신설되는 보도기획부 아래 놓이게 되는데, 해당 부서는 “디지털 시대에 대비한 뉴스 부문 혁신 변화 담당” 역할을 하는 곳이다.


KBS 한 관계자는 “보도기획부 소속이라면 기존에 보도의 전반적인 전략이나 조직·인사문제를 다루던 이들과 같이 일하게 되는 것인데 이게 데이터저널리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탐사보도팀과 데이터저널리즘팀을 한 부서에 놓은 것은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서들이 완전히 성격이 다른 보도기획부 아래 놓이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KBS기자협회 역시 앞선 성명에서 “보도기획부 산하에서 탐사보도팀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부서, 그것도 산하에 놓겠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탐사보도팀의 빛나는 성과는, 취재 및 조사 예산을 비롯한 회사의 물적 지원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탐사팀이 보도기획부 산하로 간다면 제 기능과 역할은 축소될 것이 뻔하다”고 우려했다.


▲KBS 혁신추진단이 내놓은 조직개편안 조직도

고 사장 취임 후 설립된 혁신추진단이 지난 4개월 간 준비 끝에 내놓은 조직개편안에 대해 KBS측은 “비효율성의 제거”를 목표로 한 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 조직개편의 커다란 방향 자체는 이미 고 사장 취임당시부터 예견된 부분이다. 고 사장은 취임사 등을 통해 “효율성 높은” “직무 중심”의 조직으로의 개편을 강조해왔다. 고 사장은 취임사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제품의 가치는 가격보다 높아야 하고, 가격은 생산비용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종의 벽을 깨뜨리고 직종을 중심으로 키워온 기득권을 내려놓읍시다”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번 조직개편안은 기존 6본부(편성・보도・TV・기술・시청자・정책기획) 4센터(콘텐츠창의・라디오・제작기술・글로벌) 체제에서 1실(전략기획) 6본부(방송사업・미래사업・보도・제작・운영・네트워크) 3센터(라디오・영상제작・제작기술) 1사업부(드라마사업부) 체제로의 변화가 큰 틀이다.


골자는 방송사업본부 등 ‘사업’이 중심이 된 신설조직을 중심으로 기존 조직을 완전히 재편했다는 데 있다. 방송사업본부는 광고영업과 제작투자는 물론 편성까지 함께 맡는다. 제작비 역시 배정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으로 바뀌었다. 기존 TV본부 소속이었던 교양문화국, 기획제작국, 예능국이 총 9개의 ‘프로덕션’으로 나뉘어 제작본부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들이 프로덕션별로 경쟁을 해 방송사업본부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는 식으로 변한 것이다. 기존에는 TV본부 소속 교양문화국, 기획제작국, 예능국, 드라마국이 프로그램 별로 예산을 조율해 배정받아 운영됐다. 이번 개편에서 드라마국은 별도의 드라마사업부가 돼 프로덕션 체제로 운영된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면 ‘경쟁’을 도입한 ‘사업 중심 조직으로의 개편’을 통해 ‘수익 증대’를 의도한 방향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실제 KBS는 “만성적인 영업적자로 본연의 사업(방송)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생존을 위한 변화’를 기치로 조직개편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KBS 한 관계자는 “방송사업본부에 너무 많은 권한이 몰리면서 결과적으로 (사장이) 투자담당자 몇 명만 손에 쥐고 있으면 KBS모든 프로그램을 다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됐다. 통제가 강화된 셈이다. 돈과 편성 모든 권한을 쥐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비효율성의 제거’ 대상으로 꼽혀 제거되거나 축소될 것으로 예측되는 영역들이다. 우선 ‘공영성’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보도본부의 경우 ‘시사기획 창’ 등을 만들어 온 시사제작국은 제작본부로 이동되면서 다른 프로덕션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투자 개념이 도입된 제작본부에서 공익성을 우선한 시사프로그램이 과연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돈 벌어오는 예능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탐사보도팀과 데이터저널리즘팀은 ‘효율성’을 생각하면 결코 운영할 수가 없는 부서다. 이들 부서는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수 년까지 심도 있는 취재와 분석을 통한 기획보도를 내 공영성에 이바지해왔다는 평가를 받는 부서들이다. 수 년 간의 행정 소송 끝에 70여만 건의 대한민국 훈포장 내역을 공개, 심도 있는 분석을 전했던 ‘훈장’과 이번 총선에서 후보자들의 전과내역 등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보도 등이 이들 부서가 해 온 역할들이다. 해당 부서들이 이번 개편을 통해 축소되거나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유심히 볼 점이다. 이들 부서는 공영성의 측면에서 보면 확대되는 것이 맞지만 경영과 수익 측면에선 결코 둘 수 없는 부서들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22일 특보를 통해 “조직 개편안의 큰 그림을 보면 뉴스를 제외한 전체 프로그램의 예산을 틀어쥐고는 프로덕션별 경쟁을 통해 선택과 집중으로 프로그램 경쟁력을 높이고 수익도 창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며 “하지만 문제는 같은 본부(방송사업본부)에서 편성도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광고 판매와 수익 증대가 중대 목표인 본부에서 과연 KBS의 공영적, 공익적 가치를 담보할 프로그램들에 대한 든든한 지원은커녕 그 존속마저도 어려울 판”이라고 꼬집었다.


방송사의 인프라라 할 수 있는 기술부서가 대폭 축소된 부분도 이번 조직개편의 특징이다. 이번 개편에서 기존 기술본부는 아예 해체됐다. 지상파 송신망 운영부서 등이 네트워크 본부라는 이름으로 남고, 기존 TV송출부는 방송사업본부로, 기술연구소는 미래사업본부로, 건설인프라주간은 운영본부로 찢어졌다. 방송사 운영의 근간이 되지만, 당장의 ‘수익’이 되지 않는 기술 부서의 위상이 대폭 축소된 셈이다. 교섭대표 노조인 KBS노동조합(1노조)은 지난 21일 특보에서 “방송기술 미래 비전을 말살”한 것이라며 “엔지니어는 기획, 예산없이 장비운용만 하라? 머리, 몸통은 자르고 손발만 남겨놓은 격”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구성원들은 사측의 ‘효율성’과 ‘직무 중심 조직’으로의 개편이라는 설명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고 있다. 기존 직무중심으로 잘 운영되거나, 유기적으로 잘 협업하고 있던 부서들을 분산해 당초 의도와는 더 멀어진 상태가 됐다는 지적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직종을 넘어 KBS 모든 구성원들이 입을 모으고 있는 부분이다.


먼저 보도본부 밖으로 밀려난 촬영기자들은 취재기자들과 멀어졌다. “취재단계뿐만 아니라 제작단계에서도 취재기자들과 계속 소통하며” 뉴스를 만들어 온 촬영기자들을 같은 보도본부 내에 위치시키는 게 “업무 효율을 위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게 기자들의 얘기다. 하지만 현 개편안은 ‘카메라를 들었다’는 이유로 촬영기자들을 영상제작센터로 이동시켜 놓으면서 오히려 직무 중심 조직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지적이다.


피디들 역시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KBS PD협회는 지난 21일 성명을 통해 “예능국 피디들에 대한 완전한 몰이해”라며 “버라이어티와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순환 구조도, 국차원의 컨트롤타워가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이해도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PD협회는 “예능국 제작 파워는 강력한 섭외력과 대외 영향력에서 나온다. 지금처럼 프로덕션으로 쪼개진다면 그 힘이 5분의 1로 약화되고, 외부 제작 리소스에 한 목소리로 대응하기 힘들다. 연예기획사 입장에서도 예능국을 대표할 파트너가 없어 입장이 중구난방 될 것이고, 이는 곧 예능 프로그램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KBS 한 관계자는 이번 조직개편안에 대해 “자긍심과 사명감 등을 가지고 있어야 힘들고 귀찮고 안하려고 하는 일들에 대한 돌파력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런 무형의 자산을 깡그리 짓밟아버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KBS의 이번 조직개편안을 두고 구성원들이 가장 불만을 갖는 부분은 사전에 충분한 의견 수렴없이 진행된 ‘밀실 개편안’이라는 것이다. KBS는 앞서 지난 18일 센터장급 이상만 참여할 수 있는 철저한 보안 속에 임원 설명회를 열었고, 다음 날인 19일 단 하루 동안 1노조와 새노조 등 양대 노조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이후 조직개편안의 내용이 사내에 퍼지면서, 성명도 잇따랐다. 새노조는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문제는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모이고, 축소되는 기존 직종이나 본부의 구성원들의 의견을 거의 수렴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취임 직후 조직개편을 염두에 두고 혁신추진단을 꾸리면서 지난 4개월 동안 오로지 밀실에서 단원끼리 이리 자르고, 저리 돌리며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성원들의 반발은 너무도 당연하고 옳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광고매출 감소 등 KBS가 이번 조직개편의 구실로 거론하는 요인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송가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1/4분기 KBS의 광고매출은 828억으로 전년 동기대비 319억원이 감소했다. 올해 1, 2월엔 광고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7.7%가 줄어들어 매출 하락폭이 지상파 3사 중 가장 컸다. KBS 한 관계자는 “KBS의 예산 중 광고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0~40%다. 전체예산이 1조 6000억원 정도 되는데 대략 5000억원 수준”이라며 “분명 광고매출은 중요하다. 하지만 수신료와 콘텐츠 해외판매 등 다른 부문이 수입 때문에 당장 망하는 건 아니다. 선명하게 보이는 수치만 뚝 떼서 이용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상파 방송사 전반의 광고매출이 감소하는 추세고 KBS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지만 사측이 조직개편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위기상황을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 집행부가 지난 20일 오후 KBS이사회 간담회가 열리는 회의장앞에서 조직개편안 전면 재검토 및 반려를 요구하는 피케팅을 벌이다가 청경과 충돌한 모습. (새노조 홈페이지)

KBS는 지난 20일 이사회에서 설명회를 갖고 27일 상정 및 의결을 목표로 추진해왔지만 야권 추천 이사는 물론 일부 여권 추천 이사들까지 “너무 촉박하다”는 의견을 내면서 잠시 주춤한 상태다. 당초 예정된 26일 간담회 등은 진행하고, 의결은 5월 4일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새노조는 22일 특보에서 “그러나 한 주라는 시간이 미뤄졌을 뿐, 조직개편안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와 사내 구성원들의 의견수렴 절차가 이뤄질지는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다수 이사들이 과연 5월 4일보다 더 늦은 시점까지 조직개편 통과를 연기하는 데 찬성할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새노조는 이날 특보를 통해 공청회 즉각 개최를 촉구했다.


이와 관련 1노조에서는 이현진 노조위원장이 지난 20일 오후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고, 새노조에서는 집행부가 이사회 회의장 앞에서 피케팅을 하려다가 청경들의 저지로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KBS는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조직개편은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수익 극대화’라기 보다 ‘비효율 제거’가 맞습니다”라며 “사업이라는 명칭만으로 공영성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거나 상업화 기조에 물든 게 아니냐는 비난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공영방송 또한 엄연히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조직개편은 경영진의 철학을 반영한 경영자의 고유 권한”이라며 “밀실 개편이란 지적은 그간 혁신추진단의 각 부서별 의견수렴 과정을 폄훼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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