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소 뻔한데 "고소하겠다"…알아서 조심하라는 권력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2부:위기의 기자들 ③소송에 시달리는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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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적 소송 경험한 기자들 물질적·심리적 압박 호소해…기사 쓸 때마다 자기검열도
데스크 지시로 기사 썼는데 소송 들어오자 남의 일 보듯…왜 회사가 책임져주지 않나
후속보도 등 파장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소송’ 부쩍 늘어…언론 자유·국민 알권리 침해


“기자라면 소송쯤이야.” 기자들은 소송을 두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기자로서 소송에 걸릴 만큼 민감한 사안,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다뤘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취재원에게 민·형사소송을 당한 A기자에게 소송은 생각보다 더 고된 일이었다.


중소매체에서 일하는 5년차 A기자는 어느 날 검찰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취재원이 그에게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소를 제기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소송을 예상하지 못한 탓에 크게 당황했다. 전화를 받은 뒤에도 피싱이라고 생각할 만큼 검찰의 연락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몇 주 후 진짜 소장이 날아왔다. A기자는 “법조기사를 쓰긴 하지만 막상 소송 당사자가 되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며 “취재원이 항의전화나 정정보도를 요청하는 연락도 없이 바로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회사가 아니라 기자 개인에게 건 것이라 압박감이 더 심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소송 경험이 있는 이들은 소송이 기자들을 시간적, 물질적,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수장학회 최필립·MBC 이진숙 비밀 회동’ 보도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아 형사소송에 휘말렸고, ‘중동 의료수출’ 기사로 보건복지부와 소송을 벌인 최성진 한겨레 기자는 소송 준비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뺏기게 된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소송 전 제출해야 하는 준비서면에는 왜 이 기사를 쓰게 됐는지, 기사를 통해 독자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은 무엇인지, 취재나 기사 작성 과정 등을 자세하게 써내야 한다. 기사를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며 “형사소송이라면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재판이 열릴 때마다 피고인 신분으로 출석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고 했다.


▲기자들이 소송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국가기관이나 정치인, 고위관료가 제기하는 소송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들의 언론상대 소송은 패소할 걸 알면서도 제기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보도의 사회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뉴시스)

최 기자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심리적 위축 정도는 달라질 수 있지만 연차가 낮은 기자들일수록 겁이 나고 그만큼 압박도 느낄 것”이라며 “중소 언론사 기자들은 내가 쓴 기사 때문에 회사에 경제적 손해를 입히게 될 것이란 생각만으로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우려에 A기자는 “그동안 기삿거리냐 아니냐를 두고 기사를 판단했는데 소송 이후 기사를 쓸 때마다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며 “취재하면서도 괜히 움츠러들어 활동 보폭이 줄어들었다. 명확한 사실을 보도했는데도 소송 과정 중에서 죄인이 됐다는 망상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젊은 기자들에게는 언론중재위 제소조차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종합일간지 4년차 기자는 “종교단체가 손해배상과 정정보도를 요구하며 언론중재위에 제소한 적이 있다. 소송이 아니었는데도 답변서, 취재경위를 쓰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며 “내부적으로 부장, 국장의 승인까지 받아야 하는 과정 때문에 부담스럽고 눈치보였다. 손해배상을 원했다기보다 앞으로는 해당 기사를 못 쓰게 하려는 압박으로 느껴졌다. 민감한 기사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수차례 소송을 겪은 종합일간지의 한 중견 기자는 “소송 과정이 길어질수록 지칠 수밖에 없지만 내가 취재한 게 확실하다면 어떤 소송이라도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조사 과정에서 취재원을 밝히면 분명히 이길 수 있지만, 취재원을 최대한 보호해야 하는 기자 입장에서 힘들 때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더 큰 압박을 가하기 위해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거나 기자 개인에게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게 ‘언론소송 트렌드’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우승호 서울경제 전략기획실 차장(기자)은 “예전처럼 언론사나 대표이사, 편집국장 앞으로 소송을 걸어오면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지만, 최근엔 기자 개인에게 제기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게 더 큰 부담이라는 걸 그쪽에서도 잘 알고 있다”며 “이 경우 소송지원 체계를 갖춘 언론사 기자들은 그나마 걱정을 덜겠지만, 혼자서 알음알음 변호사를 알아보고 대응하는 기자들도 많다”고 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데스크의 지시로 기사를 썼는데, 막상 그 기사를 두고 소송이 들어오니 회사에서 남의 일보듯 대응해 기자 혼자 고생하며 소송을 치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후 해당 기자는 회사에 환멸을 느껴 퇴사했다고 한다”며 “언론사 기자의 이름으로 기사를 쓴 것이면 회사가 책임지고 보호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사마다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당장 기자협회 차원에서 법률 지원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언론에 대한 소송이 단순한 압박뿐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정부나 국가기관, 관료, 정치인, 공직자 등이 제기하는 소송이다.


지난해 ‘검찰간부 구내식당에 갑질 의혹’과 ‘의정부지검 구내식당 업체선정…특혜 의혹’ 등 검찰 비판 기사를 잇달아 보도한 김주성 뉴시스 경기북부취재본부 기자는 검찰 출입 금지에 이어 올해 1월 의정부지검과 차장검사에게 ‘허위보도에 따른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당했다. 김 기자는 “정당한 비판기사를 썼는데도 국가기관인 검찰이 소송을 제기하자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소송을 악의적으로 이용해 기자 본연의 임무를 할 수 없게 하는 명백한 언론탄압”이라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언론의 취재행위나 표현의 자유를 압박하기 위해 소송을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은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다. 소송에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언론을 봉쇄하려는 의도다. 정상섭 부산일보 기자는 “지난 2013년 ‘홍준표의 거짓말…대학병원 “의료원 위탁 제안 없었다”’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당시 홍 지사가 후속 보도를 막기 위해 손해배상 1억원 민사소송을 냈다”며 “홍 지사는 질 것을 알았으면서도 소를 제기했고 결국 그의 계획대로 다른 매체들이 기사를 받아쓰지 않았다. 홍 지사는 소송에선 졌지만 목적은 달성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정 기자는 “미국에서는 정부나 정치인, 대기업의 ‘전략적 봉쇄소송’을 금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소송을 당한 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금방 사그라들었다”며 “기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자협회에서 공청회나 토론회를 거쳐 전략적 봉쇄소송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제혁 경향신문 기자도 같은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 2009년 철도노조파업 당시 코레일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뒤 코레일 사장에게 1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적이 있다. 정 기자는 “어떤 사안이 사회적으로 커지는 경로는 한 언론사가 기사를 내보낸 후 다른 매체들이 받아쓰는 것”이라며 “하지만 국가기관이 선행보도에 소송 등 강한 대응을 하는 것은 그 파장을 막겠다는 뜻이다. 하나의 권력인 국가기관이 언론에 부담을 주는 행위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 기자는 “기사가 공익을 위한 것이고 기자가 사실 확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전제하에 이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곳은 법원이다. 법원은 언론자유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며 “판례들을 보면 법원이 어느 정도 언론자유를 보장해주는 것 같다. 언론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손해배상이나 형량이 그대로 인용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국가기관이나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공직자의 경우 사생활이 아닌 공적 활동·사안에 대해서는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2008년 판례”라며 “국가권력이 허위사실, 명예훼손을 들먹이며 소송으로 압박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뿐 아니라 국민의 입도 막겠다는 의도다. 기존 언론뿐 아니라 블로거, 1인 미디어 등 국민 스스로 언론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간사는 “팩트 확인은 기사의 기본인데 힘겨운 소송이 반복되고 장기화하면 논란이 될 만한 것은 다루지 않는, 자기검열이 내면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언론을 상대로 한 모든 소송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기라고 규정짓기에는 무리라는 말도 나온다. 악의적 의도를 가졌거나 적절치 못한 기사를 쓰면서 손해를 끼치는 언론도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소송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다만 미국처럼 정부·국가기관 등의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국가기관이나 정부, 고위관료 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은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를 대행하는 기관이 언론”이라며 “법에 호소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기사를 쓰면 고소하겠다, 책임지게 하겠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모두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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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침해 목적 소송, 기자 보호장치 필요

미국 20여개 주 규제법률 시행


전략적 봉쇄소송은 일반적인 소송과는 다르다. 보통 소송은 이기기 위해 낸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거나 손해를 배상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전략적 봉쇄소송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패소할 걸 알면서도 제기하는 게 이 소송의 특징이다. 심석태 SBS 뉴미디어실장(미국 뉴욕주 변호사)은 “정당한 사유가 있다기보다 언론보도 자체나 후속보도, 다른 언론사까지 보도가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기하는 고액의 손해배상 등 민·형사 소송을 총칭한다”고 전략적 봉쇄소송을 설명했다.


국가기관이나 정치인, 관료, 대기업 등이 언론에 제기하는 소송의 목적은 명예회복이나 손해배상보다 보도의 사회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 언론사와 기자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인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소송 당사자뿐 아니라 이 사실을 아는 기자들도 ‘소송에 걸릴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미국 20여개 주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를 시행하고 있다. 허윤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미국(20여개주)의 민사소송법에는 원고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의심이 들 경우 심리 없이 소를 각하하는 규정이 있다”며 “언론이 공직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나 언론의 책임 한계 내에서 기사를 작성했는데도 소송이 들어왔을 때 법원이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각하는 소송 절차보다 빠른 1~2개월 이내에 이뤄지고, 한 번 각하된 사안은 추가 소송이 어렵다고 허 변호사는 덧붙였다.


우리 민법에는 ‘언론에 대한 전략적 봉쇄소송을 법원이 각하할 수 있다’는 문구가 존재하지 않는다. 허 변호사는 “전략적 봉쇄소송 과정에서 기자는 공적인 역할뿐 아니라 개인의 이익까지 침해받는 경우가 많다”며 “각 언론사의 대표성을 가진 기자협회가 기자 보호와 언론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측면에서 전략적 봉쇄소송에 대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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