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아동학대' 짓밟힌 인권 회복시킨 취재진 노력 돋보여

[제5회 인권보도상 심사평]배정근 심사위원장(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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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근 심사위원장(숙명여대 교수)

언론의 자유는 흔히 모든 기본권을 가능케 하는 기본권이라고 합니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다른 어떤 국민의 기본권도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기본권은 인권의 법률적 표현입니다. 따라서 언론의 자유는 국민 인권 실현의 전제조건이고, 인권은 언론이 추구하는 최상위 가치라고 하겠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인권보도상’이 각별한 의미와 무게를 갖는 이유입니다.


5회째를 맞는 올해 인권보도상에는 고무적이게도 예년보다 크게 많은 31건이 접수되었습니다. 매체별로는 방송 18편, 신문 11편, 인터넷 2편이었습니다. 8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개별 예비심사와 심사위원 전원이 참석하는 본심사의 두 단계를 거쳐 수상작을 결정했습니다. 본심사에는 개별심사 결과를 놓고 각 응모작이 인권 신장이라는 시상취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밀도 있는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심사순위가 바뀐 사례도 있습니다.


그 결과 한겨레의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 시리즈 보도가 만장일치로 대상에 선정되었습니다. 본상에는 △수사기관 개인정보 무단조회 행정소송 승소(광주MBC) △인권사각지대, 산단의 뒷모습(경인일보) △한센인 국가소송(이데일리) △마포 장애형제 사망사건(CBS) △청주 지게차 사망사건(청주CBS와 JTBC) 등 5건이 꼽혔습니다.


대상을 수상한 ‘부끄러운 기록, 아동학대’ 시리즈 보도는 한겨레 탐사보도팀 기자 5명이 2008년~2014년 7년간 학대로 숨진 아동 264명의 사연을 전수조사해 생생히 복원한 모범적 탐사기획물입니다. 심사위원들은 7개월에 걸쳐 사건의 조사기록과 판결문, 아동보호기관의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일일이 확인해 264명의 짓밟힌 인권을 회복시킨 취재진의 노고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 보도는 최근 부모에 의해 살해당한 충격적인 아동 학대 사건들이 잇따라 밝혀지게 된 전기를 제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본상을 수상한 5가지 보도물들도 인권을 최우선하는 가치지향과 보도의 완결성, 인권보도 준칙의 실천이라는 심사기준에서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다루는 분야도 노동 인권, 개인 인격권, 장애인 인권, 아동 인권 등 다양하고 포괄적이었습니다. 광주MBC 보도는 경찰이 감춰온 개인정보 무단조회 감찰 자료를 2년6개월의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이라는 지난한 노력 끝에 세상에 공개한 취재진의 열의가 돋보였습니다. 경인일보의 보도는 국가가 관리하는 산업공단에서 버젓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노동자의 인권침해 실태를 현미경을 들이대듯 정밀하게 파헤쳤습니다. 과거 국가에 의한 강제 단종·낙태에 대한 한센인의 국가배상 소송을 다룬 이데일리의 보도는 인권적 차원에서도 가치가 있지만 경제전문지가 장애인 인권에 주목한 점이 높이 평가됐습니다. 노모가 병으로 입원한 사이에 돌보는 사람이 없어 동생이 아사한 서울 마포 정신장애인 형제 사건을 다룬 CBS 보도는 사건 최초보도에서부터 무기력한 제도와 낮은 사회적 인식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취재한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이번 심사결과에서 주목할 점은 같은 사건(청주 지게차 사망사건)을 다룬 두 언론사를 공동수상작으로 결정한 부분입니다. 다른 언론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례적 결정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하고 상세히 추적한 청주CBS와 해당 사건의 CCTV 영상을 확보해 산업재해 은폐를 부각시킨 JTBC 보도 모두가 이 사건 공론화에 똑같이 기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언론사간 보도의 우열을 따지기보다는 서로 밀고 당겨주듯이 새로운 사실을 보태가면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가는 언론의 집단적 공조를 장려하는 것이 인권보도상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수상작 못지않게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인권신장에 기여한 다른 많은 보도들을 시상하지 못하는 점은 못내 아쉬웠습니다. 내년에는 이런 우수한 보도들이 더욱 많아져 우리 사회의 제도적, 의식적 인권 수준을 높여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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