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고민·후배 소통·수익 곁눈질…"데스크는 괴로워"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1부-기자들이 사는 법 ④책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데스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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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책상에서 모니터와 씨름
뉴스 종착지에서 판단의 연속
“물 먹으면 밥도 안 넘어가고
좋은 뉴스 나오면 자부심 느껴“

지면에 디지털까지 ‘만성 과로’
꾸짖고 격려하면서 부원과 소통
협찬·광고, 스폰서 부담 떠안아
“누군들 하고 싶겠나”…자괴감


“하~” 한숨이 튀어나왔다.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던 손가락이 어느 순간 머뭇거릴 때 그랬다. 머리를 긁적이고 마른세수를 하고 이따금씩 전화를 걸어 취재기자에게 뉘앙스가 맞는지 물어본 후에야 키보드 위 손가락은 다시 움직였다. 사라지고 붙여지는 문장 속에 찰나의 판단과 고민이 켜켜이 쌓였다. 핏발 선 눈, 졸린 눈, 매서운 눈은 책상 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기사와의 싸움은 쉽사리 끝나지 않아 보였다. 유례없는 한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들이도 포기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한 지난 24일 오후, 한국일보 데스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데스크는 하루에 최소 200~300개의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이다. 뉴스의 방향을 설정하고, 현장 기자를 지휘하고, 그 결과물을 가공하는 데 수많은 판단을 한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 미래에 대한 불안, 저널리즘과 수익 사이에서의 고민은 데스크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사진은 지난 25일 오전 한국일보 부장회의 모습.

비단 한국일보뿐만이 아니다. 데스크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 기사와 씨름을 하며 보낸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매순간 고민하는 것이다. 뉴스의 방향을 설정하고, 현장 기자를 지휘하고, 그 결과물을 가공하는 데 수많은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사에 유용한 정보가 담겼는지, 객관적인지, 생각하지 못한 다른 시각은 없는지, 독자에게 친절한지 등 기사를 검토할 때 데스크가 고려하는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종합일간지 한 부국장의 말처럼 “데스크는 하루에 최소 200~300개의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다.

데스크는 뉴스의 최종 관문
그 판단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른다. “지면에 나간 기사는 기본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종합일간지 A 사회부장의 말처럼 데스크는 뉴스의 최종 관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스크는 후배 기자들을 다그친다. 바이라인을 단 기자보다 더욱 큰 책임을 느껴서다. 낙종하면 그 어떤 기자보다 속이 쓰리고, 특종하면 그 어떤 기자보다 기쁜 사람도 데스크다. 종합일간지 B 스포츠부장은 “물을 크게 먹은 적이 있다. 취재기자를 야단치고 점심을 먹는데 너무 속상해서 밥이 안 넘어갔다”며 “우리도 타사 신문을 보고 타사도 우리 신문을 볼 것 아닌가. 책임자로서 정말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다른 신문과 비교했을 때 우리 지면이 가장 좋으면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아마 대부분의 데스크들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지면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뉴스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절한 조직관리와 인력운용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아픈 곳은 없는지 살피고 적절한 업무를 배분하는 것에서부터 부원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까지 데스크가 챙길 일은 많다. 기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종합일간지 C 국제부장은 “기자라서 그런지 다들 개성이 강하다. 때문에 다양성을 존중해 뉴스를 만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면서 “그러나 충분한 소통 이후 나오는 뉴스는 힘이 있다. 언제나 부원들과 소통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D 정치부장도 “모바일 단체 채팅방을 통해 수시로 대화를 한다”며 “서로 뉴스의 흐름을 제공하고, 어떤 관점에서 기사를 쓸 것인지 논의한다”고 말했다.


▲데스크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 기사와 씨름을 하며 보낸다. 사진은 한국경제 홍영식 정치부장.

그러나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 상대적으로 낮은 젊은 기자들과 소통하고 화합하는 일은 데스크에게 쉽지 않은 과제다. 종합일간지 E 문화부장은 “과거와 달리 이직할 수 있는 매체가 많아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후배들의 연대의식이 많이 부족해진 것 같다”며 “화합과 협업이 잘 안 된다. 세대 간의 격차를 극복하는 것이 고민거리”라고 토로했다.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조직관리와 인력운용에 대한 고민 또한 깊어지고 있다. 특히 온라인 부서 데스크의 경우 조직관리는 더욱 난제다. 기자들만 있는 일반 부서와 달리 개발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도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일반 부서 데스크 또한 지면 기사 외에 디지털 기사까지 챙기면서 업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A 사회부장은 “지면 기사와 디지털 기사를 모두 주문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선 기자의 취재를 방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선뜻 지시를 내리기가 어렵다”며 “업무가 늘어나고 있어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점점 큰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취재기자의 일만 많아진 것은 아니다. 데스크의 업무 또한 과중해지고 있다. 지면 기사 외에 아침저녁으로 디지털 기사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E 문화부장은 “마감 시간이 없는 디지털 기사를 수시로 챙겨야 해 어려움이 있다”며 “하루에 단신까지 포함해서 50건 정도의 기사를 데스킹하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주의 깊게 봐야 할 기사가 30건 정도”라고 말했다. B 스포츠부장도 “지면의 경우 적게는 2개면, 많게는 9개면까지 데스킹을 보느라 2시부터 6시까지 숨 돌릴 틈이 없다”며 “요즘에는 디지털 기사까지 챙기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주5일 근무 언감생심
굳이 디지털 기사를 포함시키지 않더라도 데스크는 ‘만성 과로’ 상태이다. 아침 8시30분~9시에 출근해 일부 부서를 제외하곤 대체적으로 밤 9시~11시 사이에 퇴근한다. 특히 정치부, 사회부 등 스트레이트 위주 부서는 저녁 시간대에 일어나는 기사를 처리하기 위해 늦게까지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퇴근하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주 5일 근무 보장은 언감생심, 월 3회 가량의 야근국장까지 소화해야 하는 환경에서 데스크들은 “절대적인 노동시간이 너무 길다” “주 5일 일하는 부장이 있으면 ‘부장이 맞나’하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어차피 과로는 피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문제는 그런 ‘만성 과로’ 상태가 건강상의 문제로 발전하는 경우다. 절대적인 운동 시간 부족으로 뱃살이 찌는 건 ‘애교’고, 대부분 장시간 의자에 앉아 있어 허리와 목, 손목 통증을 안고 있다. 높아지는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도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경제지 F 증권부장은 “주위에 돌연사하거나 암에 걸려 죽는 친구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다”며 “데스크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어 더욱 불안하다”고 말했다.


업무 외에도 사회적인 책임이 큰 세대인 탓에 데스크들의 스트레스는 높다. 대체로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는 시기와 부모가 연로해지는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과중한 업무로 가정에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해 죄책감은 늘어가고, 특히 데스크가 여자인 경우 스트레스는 일상화된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맡는 경우가 거의 없어 가정과 직장에서 이중고를 겪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경제 김수언 금융부장.

그나마 업무 과다는 그들의 자존심을 꺾지는 않는다. 가장 큰 딜레마, 스트레스는 저널리즘과 회사의 수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회사의 생존과 수익을 위해 데스크는 온전히 기자일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지 G 부장은 “데스크가 되면 준경영을 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맡아야 하는 악역이기에 앞장서서 협찬·광고를 ‘땡겨올’ 수밖에 없다”며 “후배들은 올바른 기자정신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하지만 누군들 바꾸고 싶지 않겠나. 하지만 현실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G 부장은 또 “모 기업체 홍보실과 잘 얘기가 됐는데 후배가 그 기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가져올 때 가장 곤란하다”며 “서슬 퍼런 기사를 무디게 갈아버리면 어느 기자든 좋아하지 않는다. 후배들에게 지탄을 받을 때는 스스로도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저널리즘과 수익 ‘줄타기’
경제지를 비롯해 종합일간지의 경제부, 산업부 데스크는 회사의 수익적인 면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처해 있다. 이들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사이에서 어느 선까지가 적정한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E 문화부장은 “최근 언론사 경영 수지가 점차 악화되면서 전 부서 데스크에게 ‘밥벌이’를 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이 떨어진 곳도 있다”며 “갈수록 이런 풍토가 심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데스크를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편집국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은 한정적인데 정년 연장 등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일간지 H 문화부장은 “데스크 이후에 전문기자, 논설위원 등으로 가야 하는데 자리가 몇 개 없어 눈치가 보인다”며 “사업 부서를 전전하는 것 아니면 전직 등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지 I 부국장은 “대부분의 후배 데스크들이 회사의 생존을 위해 광고·협찬, 스폰서 유치를 직·간접적으로 신경 쓰고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업무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건 기업이건 대학이건 자신의 전문성이나 경륜을 살릴 기회가 온다면 전직을 고민하는 데스크들이 꽤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업무, 미래에 대한 불안, 저널리즘과 수익 사이에서의 고민 등은 데스크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그러나 데스크들은 이런 환경에서도 ‘좋은 뉴스’를 만들기 위한 궁극적인 목적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쓴 기사가 참 좋은 기사였어”라고 스스로 생각할 때, 남들에게 인정받을 때, 그 기사가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을 때 강한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스크는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잔소리를 퍼부으며 후배 기자들을 닦달한다. 한편으로는 현장과 협의하고, 다양한 시각을 담기 위해 나름대로 취재해 유용한 정보를 담는다. 또 50점짜리 문장을 100점짜리로 고치기 위해 연신 커피를 들이켜며 머리를 긁적이기도 한다. 데스크는 그래서 오늘도 자리에 앉는다. ‘좋은 뉴스’를 만드는 마지막 키퍼라는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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