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 기자의 '좋아요'] 최연진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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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한국일보 기자

[영화] 커커시리:마운틴 패트롤


기자협회보가 새해부터 기자칼럼 ‘그 기자의 좋아요’를 시작합니다. 나를 돌아보게 하거나 인간을 이해하고, 세계를 인식하는 데 영향을 끼친 책, 영화, 음악, 그림 등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가슴 한 귀퉁이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리겠습니다.


커커시리(可可西里). 몽골어로 아름다운 소녀, 티베트어로 푸른 산이라는 뜻의 커커시리는 이름과 달리 남극, 북극과 함께 사람이 살기 힘든 세계 3대 오지로 꼽힌다.


중국 칭하이성(靑海省) 장족자치구(藏族自治區) 서북부에 위치한 이 곳은 쿤룬(崑侖) 산맥 남쪽 해발 4800미터 높이의 고원이다. 연 평균 기온이 섭씨 영하 4도, 추울 때는 섭씨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며 초당 20~28미터의 거센 바람이 몰아친다.


고도가 높아서 산소가 평지의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조금만 빨리 걸어도 금방 숨이 차며 심장으로 피가 제대로 흘러들지 못해 쉽게 피곤하고 깊은 잠을 잘 수 없다. 한마디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이 곳은 세계에서 세 번째, 중국에서 가장 큰 무인지역이다.


그렇다 보니 이 곳은 온갖 희귀한 야생동물과 식물의 천국이 돼버렸다. 그 중에서 으뜸은 소위 장링양으로 불리는 티베트 영양이다. 커커시리에서만 서식하는 이들은 보온 능력이 탁월한 털과 가죽 덕분에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영화 '커커시리:마운틴 패트롤' 포스터.

장당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이들의 가죽은 최상급 겉옷인 샤투슈로 제작돼 미국과 유럽으로 팔려 간다. 당연히 밀렵꾼들이 달려들 수밖에 없다. 그 바람에 한때 100만마리를 헤아리던 티베트 영양은 개체수가 1만마리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이를 보다 못한 커커시리 인근 주민들이 생업을 팽개치고 밀렵꾼들을 막기 위해 민간 수비대를 만들었다.


중국의 루 주안 감독이 2004년에 만든 걸작 ‘커커시리:마운틴 패트롤’은 바로 이 민간 수비대의 충격적 실화를 다룬 드라마다. 중국 베이징의 한 신문사 기자가 민간 수비대와 함께 밀렵꾼 추적에 나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수려한 현지 풍경과 함께 재현했다.


이 영화가 돋보이는 점은 민간 수비대의 숨겨진 진실을 미화하거나 왜곡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민간 수비대는 밀렵꾼들에게서 압수한 모피 밀거래로 경비를 조달한다. 루 주안 감독은 어디까지를 정의로 볼 것인지에 대한 답을 감상자의 몫으로 돌렸다.


이 작품을 보면 작품 속 기자가 던진 “기사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곱씹게 된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 언론이라고 믿는 기자라면 한 번쯤 해봤을 만한 생각이다.


작품 속 기자는 이를 해냈다. 중국 정부는 보도가 나간 뒤 커커시리를 국가보호구역으로 지정했고 티베트 영양의 모피 매매를 전세계적으로 금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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