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너 시간 자며 버티는 건, 좋은 기사 쓰고 싶어서죠"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1부-기자들이 사는 법 ①수습기자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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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거리 찾아 경찰서 이곳저곳
보고시간 다가오면 식은땀 줄줄
매일 실수 반복하고 혼도 나지만
“수고했다” 선배 한마디에 기운

낯선 사람 만나는 게 스트레스
이젠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힘들지만
사회에 기여하는 기자 되고 싶어


기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불신과 비아냥, 기대와 희망이 섞여 있다. 급변하는 언론환경과 수익만 추구하는 경영논리는 기자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럼에도 취재현장을 지켜야 하는 건 기자의 숙명이다. 기자협회보는 신년기획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기자’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1부 ‘기자들이 사는 법’은 수습기자에서 허리급 기자를 거쳐 고참기자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기자들의 고민과 번민, 열정과 희망의 사연을 담는다. 2부 ‘위기의 기자들’은 저널리즘을 박제화한 언론환경, 시대에 뒤떨어진 뉴스룸의 조직문화를 들춘다. 3부 ‘그래도, 기자는 기자다’는 기자의 소명을 받들고, 우리 사회를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자들을 만난다.


▲치열한 언론사 입사 경쟁을 뚫은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등을 순회하며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일명 ‘사스 마와리’를 거친다. 지난달 31일 새벽 김주현 머니투데이 수습기자가 서울 종암경찰서로 들어가는 모습과 지난해 7월 서울 동국대에서 치러진 한국일보 73기 견습기자 공개 채용 필기시험장의 모습. (사진=김달아 기자·한국일보)

하얀 입김이 흩어지던 지난달 30일 저녁, 두툼한 카키색 야상점퍼를 입은 김주현 머니투데이 수습기자가 서울 중랑경찰서에서 택시를 잡아 탔다. 마음은 급한데 이날따라 도로에 차가 꽉 찼다. 평소 택시로 20분이면 될 거리지만 30분을 훌쩍 넘겨서도 택시 안이었다.


이동시간이 길어지자 달리는 택시에서 관할 소방서 상황실로 전화했다. 화재가 났는지 인명구조건이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수첩에 적었다. 김 기자는 “보고거리가 마땅치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3시간 마다 있는 보고 시간이 너무 빨리 온다”며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수습기자 대부분이 거친다는 ‘사스 마와리(경찰서 등을 순회하면서 사건사고를 취재하는 일, 찰회(察廻)의 일본어식 표현)’ 4주차다.


도봉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형사당직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야간당직은 형사 1팀. 김 기자는 이걸 또 취재수첩에 기록했다. 경찰서에서 보고 들은 세세한 내용도 선배한테 보고해야 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형사들은 무뚝뚝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김 기자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었다. 담당 형사는 “말해줄 사건이 없다”며 단호했다. 계속 되는 거절이 민망할 법도 했지만 김 기자는 꽤 끈질기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는 수습생활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평생 만난 이보다 이때 알게 된 사람이 더 많을 정도란다. 언론과 상관없어 보이는 교육공학을 전공했지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서 기자가 됐다.


“기자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주목하고 고민하고, 계속 배울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늘 현장에 있어야 하니까 활동적인 제 성격에도 제격이죠. 우리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마와리’를 하며 가장 힘든 점을 꼽아보라니 단번에 “부족한 잠”이라고 말한다. 평균 수면시간은 2~3시간 정도. 첫 보고는 오전 6시30분, 마지막 보고는 새벽 0시30분이다. 3시간 마다 보고하는데 그 사이 경찰서 2~3군데를 돌아야 한다. 종종 집회·시위 현장에 가거나 기획취재를 할 때도 있지만 첫 보고와 마지막 보고는 필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진행하는 ‘수습기자 기본교육’ 강의 장면.

김 기자는 “머니투데이는 4주로 짧은 편이다. 몇 개월씩 더 고생하는 타사 수습들도 많아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다”며 “모든 수습들이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노원경찰서, 강북경찰서를 거쳐 새벽 0시쯤 종암경찰서에 도착했다. 성북·종로·종암서 등이 포함된 일명 종로라인에서 수습이 출입할 수 있는 2진 기자실이 있는 곳이다. ‘하리꼬미’(경찰서에서 숙식하면서 취재하는 것)를 하는 수습들은 이곳에서 잠을 잔다.


종암서 별관 1층에 있는 기자실에는 2층 침대 하나와 2~3명이 잘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동대문서, 서초서 등을 제외하곤 기자실에는 별도의 샤워시설이 없다. 경찰이 이용하는 곳도 있지만 여기자들이 쉽게 사용하기는 어렵다. 화장실에서 씻거나 물 없이 머리를 감을 수 있는 드라이샴푸를 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0시30분, 김 기자는 이날 마지막 보고를 하면서 선배와 끊임없이 휴대폰 메신저로 대화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폰팅’ 수준이다. 다음날이 2015년의 마지막 날이어서 노원구 쪽방촌의 세밑 르포를 쓰기로 했다. 김 기자는 “매일 실수하고 혼나지만 ‘수고했다’는 선배의 한 마디에 힘이 난다”며 “수습교육을 맡은 선배들도 힘들 것이란 걸 잘 안다. 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그는 수습일지를 쓴 뒤 새벽 2시를 넘겨서야 잠을 청했다. 샤워는커녕 세수조차 하지 못했다. 며칠 째 현장을 누비며 입고 있던 그 옷 그대로였다. 자리에 누운 지 5분도 되지 않아 쌔근쌔근 숨소리가 들렸다.


종암서 기자실에서 2시간 남짓 잔 뒤 새벽 5시, 첫 보고를 위해 경찰서를 순회하는 A수습기자를 만났다. A기자의 잔뜩 부은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지막 보고를 마치고 2진 기자실에 갔는데 잘 자리가 없었단다. 다른 라인의 기자실로 이동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 고작 1시간 자고 나오는 길이었다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먼저 향한 곳은 형사당직실이었다. 간밤에 어떤 사건이 났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담당형사가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다. 경찰서를 제집처럼 들락날락하는 수습기자들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A기자가 수차례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A기자는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황당해 했다. 다른 경찰서를 돌고나서야 작은 교통사고 몇 건을 보고할 수 있었다.


그는 “처음 마와리를 돌 땐 경찰이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큰 스트레스였다. 적응하는 데 몇 주가 걸렸다. 이젠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종암경찰서 별관에 있는 2진 기자실의 모습. ‘하리꼬미’하는 수습들이 잠을 자는 곳이다.

A기자는 “사회에 불만이 많아서” 기자가 됐다. 딱딱한 관료제 속에서 일 할 자신도 없었다. 그는 “다른 언론사가 순식간에 베껴 쓸 수 있는 단독기사는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며 “오래 취재해 긴 호흡으로 쓸 수 있는 기사, 사회에 긍정적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또 A기자는 “어떻게 잘 할 수 있을까 늘 고민하지만 여전히 실수가 많다”며 “현장에서 부딪치면서 어떤 기자가 돼야 하는지, 더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지 생각한다”고 했다.


경찰서나 현장에서 만난 수습들은 육체적·정신적인 고통 속에서도 초년 기자의 삶을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있었다. 기자가 되고 싶던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기자로서 이루고 싶은 목표에 한 발 한 발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최현규 뉴스1 사진부 수습기자는 “마와리 돌며 보고할 때면 선배들은 ‘누구에게 들었느냐’, ‘확실한 정보냐’ 등을 여러 번 물어보면서 정보의 출처 파악을 강조한다”며 “사진기자로서도 왜곡되지 않은, 올바른 사실을 전달하는 게 기사의 밑바탕이라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 기자는 “잠이 부족한 것이 힘들지만 기자가 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선배들도 이 길을 걸어왔고 동료들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편집기자인 박지원 세계일보 수습은 한 달 간 현장취재를 경험하면서 “기자의 사회적 역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 기자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기자가 사안을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다”며 “진실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듣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강영운 매일경제 수습기자는 “기자가 돼 질문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아서 좋다”며 “취재를 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것을 잘 알려주지만 불리한 점은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취재원이 숨기고 싶은 것을 밝혀낼 질문력을 키워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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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끝나니 빚만 남더라”
과도한 교통비·수면 부족 하소연


열악한 경찰서 근무환경과 ‘마와리, 하리꼬미’의 교육 방식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모 언론사 수습기자는 “취재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알아오라는 식의 주문이 얼마나 효율적인지 의문이 든다”며 “일부러 알려주지 않는 것인지 선배들도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는 것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또다른 수습기자는 “선배의 압박에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내긴 한다. 하지만 부족한 수면시간과 늘 보고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긴장감에 정신이 피폐해질 뿐 아니라 건강도 나빠진다”고 토로했다.


사스 마와리를 도는 수습기자들은 가장 큰 불만·불편 사항으로 부족한 수면시간과 과도한 교통비 부담을 꼽는다. 그중 택시비는 마와리 기간 수습들을 ‘빚쟁이’로 몰아넣는 주범이다.


경찰서를 순회하며 2~3시간 마다 보고해야 하는 수습들은 말 그대로 시간에 쫓긴다. 라인별로 정해진 경찰서, 병원, 대학을 빨리 오가려면 대중교통보다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마와리 한 달 동안 택시비로 200~300만원을 썼다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사실이다. 교통비로 400만원 이상 썼다는 수습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국민일보 노조는 지난해 10월 자사 수습기자들을 상대로 ‘사스마와리 교통비’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노조는 지난해 10월5일자 노보에서 “14주 동안 이어진 사스마와리 훈련기간 동안 택시비로 매달 쓴 비용이 200만원선으로 집계됐다. 3개월만 잡아도 600~700만원에 달한다. 수습기자 대부분은 개인 신용카드가 없어 부모 명의의 카드로 택시비를 결제했다고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수습기간 지급되는 급여는 기본급의 60~80% 수준이다. 교통비에 삼시세끼 식대까지 포함하면 월급은 마이너스다. 빚은 더 늘어난다. 별도로 통신비나 20~30만원의 취재비를 지원하는 곳도 있지만 수백만원대의 교통비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지원마저 없는 언론사도 많다.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택시비가 지원되는 언론사 수습들에 빌붙어 마와리를 돈다는 슬픈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 수습기자는 “부정한 사회를 비판하는 언론사가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하고 각종 수당까지 주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며 “선배들도 기자로서 관습화된 언론계 병폐를 없애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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