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 활동 부추기는 일본 언론

[글로벌 리포트 | 일본]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

지난달 23일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벌어진 폭발음 사건과 관련한 언론보도는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주범이 누구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대국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보도는 신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일본 언론은 경찰정보에 의존한 ‘받아쓰기’와 ‘몰아붙이기’ 보도를 하고 있다. 용의자 신분인데도 개인정보는 물론이고 얼굴까지 공개한 것은 “한국, 너 이번에 잘 걸렸어”라는 일본 내 혐한 포퓰리즘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용의자로 지목된 한국인 전모씨가 자진해서 일본으로 재입국한 것도 그렇고, 게다가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루나 배터리 타이머 등을 소지한 것도 더더욱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전씨는 범행을 시인했다가 다시 부인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실들이 실타래처럼 뒤죽박죽으로 엉켜 있다.


정보가 결여된 상항에서 단편적인 정보는 진실을 호도하기 쉽다.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산케이는 23건, 마이니치는 14건, 요미우리는 11건, 아사히는 9건의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단일 사건치고 보도건수가 적잖지만 조사관계자, 공안관계자 등 경찰측 정보원을 인용한 것이 대부분이다. 경찰이 용의자를 조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취재경쟁은 경찰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열취재를 공권력은 정보조작의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일본 경찰은 지난달 23일 야스쿠니신사에서 한 차례 폭발음이 발생한 직후 보안 카메라에 잡힌 전모씨가 한국인이라는 점, 전씨가 지난달 21~23일 일본에 머물렀다는 점, 신사 인근 남성화장실에서 수거한 담배꽁초 DNA와 전씨가 머물던 호텔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의 DNA가 일치했다는 점, 폭발물에 한국산 건전지가 사용되었다는 점, 재입국시 화약으로 보이는 분말과 타이머를 휴대했다는 정보 등을 언론에 공개했다.


지난 9일 하네다 공항에서 주거물 침입죄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 전씨는 “일본 기자들의 취재를 받고 야스쿠니 신사의 화장실을 확인하려고 왔다”고 재입국 이유를 밝혔다. 그럼에도 일부 일본 언론은 어떤 주장이라도 폭력이 동반되면 테러라면서 전씨를 테러리스트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보도는 전씨를 용의자가 아닌 범죄자로 단정하고 정보를 흘리는 일본 경찰의 의도와 일맥상통한다. 일본 경찰은 전씨가 지난달 입국 시 체류기간이 3일에 불과한 것은 애초부터 범죄 목적으로 입국했기 때문이고 또 지난 9일 재입국한 것은 재범을 목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조사가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전씨가 테러리스트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경찰 정보를 그대로 받아쓰면 ‘폭발범 재입국’이라는 기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일본 경찰은 프랑스에서 자생적 테러를 감행한 ‘외로운 늑대(론 울프)’와 같이 전씨를 반일 의식을 가진 과격한 테러리스트로 둔갑시켰다. 일부 언론은 조사당국이 제공한 인물정보를 바탕으로 전씨의 범행에서 야스쿠니신사에 대한 집착과 반일의식이 엿보인다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상의 (반일) 정보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범행을 위한 상징적인 장소로 야스쿠니를 선택한 것은 아닌가라는 조사 관계자의 분석을 인용해서 신빙성을 덧붙이고 있다.


그러나 전씨가 폭발물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일본 경찰의 판단은 일관성이 없다. 경찰은 전씨가 인터넷 정보를 참조해서 폭발물을 제조했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며칠 후에 전씨가 폭발물 제조지식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정반대의 정보를 내놓았다. 공중화장실에 설치된 폭발물은 상당한 지식과 기술을 요하는 것으로 손쉽게 만들 수 없는 구조라고 산케이는 보도했다. 경찰정보에 의문을 제기하기 보다는 전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제를 일본 언론들은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언론의 논조는 결국 요코하마 한국 총영사관에 오물이 투척되는 불상사를 불렀다. 일본 극우단체인 재특회는 ‘야스쿠니 사건에 대한 보복’이라고 투척 목적을 밝혔다. 명백한 테러임에도 일부 언론은 ‘괴롭힘’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지난 13일자 아사히, 마이니치, 산케이는 한 꼭지로 짧게 다뤘고, 요미우리는 침묵했다.


사실보도라는 이름으로 이번 사건을 테러로 단정하고, 일본 내 혐한의식을 부추기는 일부 언론의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 이런 보도들은 독자들의 혐한의식을 어떻게 각성시킬지 모른다.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홍천 도쿄 도시대학 교수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