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와 시리아 내전 그리고 기후변화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국제부 차장

▲김동진 세계일보 국제부 차장

슈퍼 엘니뇨 때문에 지구촌이 포근한 11월을 보내고 있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기상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구촌의 정치 안보 기상도는 혹한기를 맞고 있다.


사회변동을 분석하는데 있어 자연 요소는 종종 논외로 취급되곤 한다.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치적·경제적·종교적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자연의 영향에 대해선 주목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이슬람 분파 갈등과 서방의 중동정책, 시리아 내 복잡한 정치상황, 유럽 내 무슬림 공동체 문제 등이 상호작용한 결과로만 이해되는 것 같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요인이 있다. 어쩌면 시리아 내전과 IS의 발흥 그리고 파리 테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어떤 요인보다 심대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북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인류문명의 주요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했다. 코란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이 바로 이곳이라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었다. 덕분에 2000년대 초반까지도 비교적 안정을 구가했다.


그러나 최근 서구 미디어에 비친 시리아의 모습은 어떤가.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든 황무지 벌판과 끝없이 길게 늘어선 난민수용소 천막. 국민의 최소 40%인 760만명이 떠나 버린 버림받은 땅이 돼 버렸다.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리처드 시거 교수는 지난 3월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기후변화와 시리아 최근 가뭄의 시사점’이라는 논문에서 지난 2006∼2010년 시리아를 강타한 기록적인 가뭄을 이 잔인한 스토리의 시발점으로 제시했다. 시리아는 그 시기 지구 온난화에 따라 강수량이 점점 줄고 토양의 습도도 낮아져 농경이 불가능해졌다. 오아시스 농업을 할 수 없게 된 농촌 주민들이 무작정 도시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도 다마스쿠스 등에 거대한 빈민 지역을 형성했고, 정부 정책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내전으로 비화되면서 20만여명이 학살됐고, 수백만 명의 난민을 낳았다. IS는 이런 틈을 타 발흥한 세력이다. 시거 교수는 “시리아에서 가뭄이 정치 불안의 촉매로 작용했다”며 “인간이 기후체계를 교란한 게 내전의 가능성을 2∼3배 이상 높인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시리아 외에도 터키와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도 이 시기 기후변화로 큰 타격을 받은 나라들이다. 앞으로 제2, 제3의 시리아 사태가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하다. 안토니오 쿠테레스 유엔난민기구(UNHCR) 고등판무관은 이미 2009년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총회(COP21)에서 “기후변화가 지금까지 남반구에 더 큰 악영향을 미쳤으나 북반구에서도 인구 이동을 초래할 만큼 거세질 조짐”이라며 “해수면이 상승하고 해안이 가라앉는 재앙은 국가뿐만 아니라 문화와 공동체 정체성까지 그대로 익사시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국제사회가 IS를 소탕하려면 군사적 조치와 함께 시리아 지역을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도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IS의 테러로 피를 흘린 프랑스 파리에서 오는 30일부터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리는 것은 그런 면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와 국제안보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벌일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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