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사장이 책임지십시오

[컴퓨터를 켜며] 최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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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영 기자

“노사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노사는 위기를 함께 극복해 갈 동반자입니다. 저는 노와 사가 상호존중하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것을 제안합니다. 노조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것이지만, 법과 규정을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대로 대응할 것입니다.”


24일 취임한 고대영 사장의 취임사 중 노사관계를 언급한 부분의 전문이다. 원칙적인 말이긴해도 ‘동반자’, ‘상호존중’, ‘귀를 기울일 것’ 등의 구절은 고무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특히 이 말이 KBS 양대 노조로부터 ‘절대불가’ 후보로 거론되던 고 사장의 입에서 나와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취임사에서 언급됐듯 KBS의 노사관계는 변해야 한다. 조대현 사장 시절 KBS노사관계는 좋지 않았다. 특히 임기 말 “연임을 노린 조 사장의 무리수”라는 평가가 나오는 논란과 의혹들이 잇따르면서 관계는 극으로 치달았다. 정점은 지난 19일 벌어진 경영직군 신 모 씨에 대한 해임조치였다. 그는 방향은 다를지언정 고대영 사장이 밝혀온 인식처럼 “자사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이에 사내 게시판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뜻을 밝혔다. 본부장 등에 대해 욕설을 한 부분은 신 씨 본인도 공개사과를 한 만큼, 걸맞은 징계를 내리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조대현 사장은 임기 마지막 사인으로 사원의 해고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조대현 사장은 지난 23일 퇴임식에서 “인간으로서의 악업을 쌓았다고 생각하며 속죄하며 살겠다”고 밝혔다. 나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는 이가 하는 속죄의 말은 자기위안일 뿐이어서다.


그리하여 결국 공은 고대영 사장에게 돌아간다. 전임 사장의 일을 뒷수습하는 것은 신임 사장으로서 불가피한 숙명일 게다. 마침 신 씨는 새노조의 조합원이기도 하다. 인사위원회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해임이 결정된 만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KBS사장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보다는 더 많다는 걸 안다. 이를테면 특별사규를 만들어 그를 다시 채용하는 방법 같은 것 말이다. 그런 노력을 보여준다면 이번 해고 사태는 노사관계의 변화를 가져다 줄 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지난 30년간 KBS사람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고대영 사장이, ‘동반자’와 ‘상호존중’의 대상으로서, KBS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깔끔한 시작일 것이다.


고대영 사장의 첫 출근일, 본관 앞에서 2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안전요원들이 조합원들에게 충돌자제를 당부하며 한 말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적이 아니라) 그냥 입장이 다른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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