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감에 빠질 때 생각나는 안수찬 선배

[기자가 말하는 기자] 임성호 YTN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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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YTN 기자

안수찬 선배의 이름을 처음 안 건 수습 생활이 끝나가던 때였다. 소일거리로 서점에 갔다가 ‘뉴스가 지겨운 기자’라는 책을 보았다. 기자 된 지 다섯 달밖에 되지 않은 천둥벌거숭이 눈에 왜 저런 제목이 들어왔는지 아직도 알 수 없다. 목차만 훑고 홀린 듯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한 달 뒤 세월호가 침몰했고 정신없는 시절이 흘러갔다.


지난 6월18일에 세월호 삼보일배 순례단을 취재했다. 단원고 학생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는 세월호 인양과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진도 팽목항에서 서울 광화문을 향해 백 일 넘도록 걷고 있었다. 이날은 서울 염곡동 코트라 빌딩에서 서초동 예술의전당까지 5km를 갈 예정이었다. 바다에서 건져낸 희생자와 배의 넋을 이끌고, 순례단은 세 걸음마다 절하며 나아갔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1년2개월이 흐른 뒤 내게 허락된 취재는 이 한 옴큼의 거리였다. 행렬의 후미 너머로 수만 번의 무릎 자국이 이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무수한 엎드림 속에서 이호진씨의 염원과 슬픔도 깊어졌을 텐데, 반나절의 취재로 그 슬픔을 다 더듬을 수는 없었다. 그 날 이호진씨의 삼보일배는 석 줄짜리 단신으로 방송됐다. 나는 무력해진 채 집으로 돌아왔다. 방에 틀어박혀 안수찬 선배의 책을 집어 읽었다. 책은 여기저기 접혀 있었고, 같은 문장을 연필과 볼펜으로 여러 번 밑줄 치기도 했다. 페이지를 접고 밑줄을 친 횟수만큼 나는 무력했던 것일까.


안수찬 선배의 책에는 상실과 소외의 자리에서 먹고 자면서, 거기서 굴러가는 삶을 드러낸 기사가 있었다. 안산 합동분향소와 진도 팽목항, 인천 연안부두에서 우는 희생자 가족을 잠시 ‘스케치’만 하고 돌아올 때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몇 명이 집회를 열었다는 기사를 쓰고 돌아올 때마다 나는 안수찬 선배의 책을 읽었다. 상실과 소외의 모습을 스냅사진 찍듯 쓰는 기사가 아니라, 그것들의 맥락을 취재할 수 있는 기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기원하듯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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