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던 김시헌 선배

[기자가 말하는 기자] 한종구 연합뉴스 대전충남 기자

▲한종구 연합뉴스 대전충남 기자

2007년 6월 어느날. 사회부 사쓰마와리를 마친 초짜 기자에게 취재지시가 떨어졌다. 지방의원 몇 명이 해외연수를 떠났는데, 예산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내용이었다.


감추려는 취재원과 하나라도 더 캐내려는 기자의 긴 신경전 끝에 초짜 기자는 지방의원들의 해외연수 비용을 한 이익집단이 부담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의정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의회에서 부담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행위는 편법을 넘어 위법의 소지도 있었다. 문제는 해외연수를 다녀온 지방의원 가운데 초짜 기자를 동생처럼 아껴주던 의원도 있었다는 점.


초짜 기자는 고민 끝에 사실 관계를 보고한 뒤 해당 의원과의 관계를 털어놓으며 “기사를 꼭 써야 하느냐”고 질문했다. 당시 선배는 “기사를 쓰느냐 마느냐는 현장을 취재한 기자가 판단하는 것”이라면서도 “기자는 누군가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하면 기사를 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기사를 쓰지 않고, 불법을 저질렀어도 상대방이 불쌍하다고 넘어가기 시작하면 기자로서의 생명은 끝”이라고 조언했다.


초짜 기자는 기사를 작성했고, 적지 않은 후폭풍이 있었다. 일화의 주인공은 대전일보 김시헌 선배다. 초짜 기자는 독자도 예상하듯 필자다.


촌철살인 같은 기사는 물론 출입처 및 선·후배와의 관계 등 모든 면에서 후배들의 모범이 됐던 김 선배는 필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말 그대로 필자의 롤 모델이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필자는 회사를 옮겼고, 김 선배를 만나는 날도 1년에 한두 번에서 2∼3년에 한두 번으로 뜸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최근 김 선배가 필자에게 한 말과 똑같은 말을 들었다. 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법정 스릴러 영화 ‘소수의견’에서였다.


재개발 철거 현장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취재하던 주인공 기자는 함께 호흡을 맞추던 변호사를 향해 “기자는요, 누군가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하면 기사 못 써요”라는 말을 했다. 순간 온몸이 감전된 것 같았다. 그리고 반성했다.


기자로서 너무나 당연한 말을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낸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은 기자의 길을 가르쳐 준 김 선배에게 소주 한 잔 하자고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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